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170

가을에 대하여 (자작 시)

가을에 대하여 / 이 효​ 누가 불붙여 놓았나 저 가을 산을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은 붉은빛이 노란빛으로 타오르다 고요하게 가라앉는 것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은 모난 바위가 서로 상처로 굴러가다가 둥근 바위로 물가에 자리를 잡는 것 하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 가슴 박힌 못에 가을 풍경 한 장 거는 일이다

외돌개의 꿈

외돌개의 꿈 : 김 정 수 외돌개의 꿈 / 이 효 ​ 울고 싶은 날 바다에 그림을 그렸다 그네처럼 술에 흔들리는 아버지 옥수수 알갱이 같은 자식들 죽어 별이 되는데 아버지는 밖에서 알갱이 한 알 강포에 싸오신다 빨랫줄에 구멍 난 속옷들이 서울로 달아난다 찌그러진 양푼이에 바다를 푹푹 끓여 팔았다 시퍼런 몸뚱이 쓰러질 때마다 외돌개의 꿈은 뜨겁다 겨울 문턱 넘는 그림쟁이 왜 울고 싶지 않았겠나 ​발효되지 못한 인생 새벽 불빛 시어지도록 눈 내린 벌판에 붓질을 한다 외돌개의 꿈이 바다에 허파로 우뚝 솟아오른다

나무 한 그루 / 이 효 (자작 시)

그림 : 최 선 옥 ​ ​ 나무 한 그루 / 이 효 ​ 팔순 노모 새 다리 닮은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는다 저 다리로 어찌 자식들 업고 찬 강물을 건넜을까 ​ 찬바람 부는 날 아버지 닮은 나무 옆에 앉는다 영감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가야겠소 나무는 대답이 없다 ​ 텅 빈 공원에 쪼그만 새를 닮은 어머니 훌쩍 어디론가 날아갈까 봐 내 가슴에 푸른 나무 한 그루 부지런히 눈물로 키운다. ​ 눈에는 붉은 산이 들어앉아있다. ​ ​

가을을 견디다 ( 자작 시)

가을을 견디다 / 이 효 가을이 오면 말문이 터진다 목구멍 깊이 밀어두었던 그리움이 꽃으로 핀다 봄에는 벚꽃이 환해서 울음을 참는다. 가을에는 벚나무 잎이 곪아 붉은 꽃으로 핀다 인생을 한 번쯤 곪아보지 않고 세월을 말하지 말자 가을은 아픈 사람들끼리 바스락거리는 심장을 안고 꺽꺽 울어주는 것이다. 오늘도 길거리로 나선다 낮은 곳에서 들리는 기도 소리 빨갛게 불타오른다. 뜨겁다.

파란 담벼락에 (자작 시)

파란 담벼락에 / 이 효 나는 고운 빛깔이 있어 멀리 있는 사람은 아는데 가까이 있는 너는 모르네 나는 아름다운 향기가 있어 멀리 있는 사람은 아는데 가까이 있는 너는 모르네 내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너와 조금 떨어져 활짝 피고 싶은 거야 그럼 내 빛깔과 향기가 전해지겠지 코스모스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파란 담벼락에 활짝 핀 꽃

가을 눈동자 (자작 시)

가을 눈동자 / 이 효 누이가 오려나? 마을 어귀에 노란 국화 켜놓았다 짧은 햇살에 동네 처녀들 치맛자락 들고 뛰노는데 서울로 돈 벌러 간 누이는 오지 않는다 햇살을 빨랫줄에 매달아 논다 깜박 졸고 있는 사이 해는 손가락 사이로 빠졌나간다 밤새도록 가을 나무에 떼울음 붉게 매달아 논다 노랗게 그리움 가지마다 속울음 익는다 이른 아침 먼저 마중나간 눈동자들 마을 어귀가 화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