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바람 28

부치지 않은 편지1 / 정호승

그림 / 성기혁 부치지 않은 편지1 / 정호승 ​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 이슬에 새벽 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 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정호승시집 / 새벽편지

꿈과 충돌하다 / 조하은

그림 / 최 미 정 꿈과 충돌하다 / 조하은 밤인지 새벽인지 모호한 시간 벗은 몸을 파스텔 톤으로 비춰주는 욕실 거울 속에서 아련함과 사실 사이의 경계를 바라본다 기억할 만한 봄날은 어디에도 없다 얼토당토 않은 박자가 쉰 살의 시간을 두둘겨댈 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고독이 타일 위로 뚝뚝 떨어졌다 심장과 뇌의 온도가 달라 가려운 뿔들이 불쑥불쑥 자라났다 날마다 기울어지는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잠으로 가는 길을 몰라 날마다 잠과 충돌했다 바람이 몸 안을 들쑤시고 있었다 조하은 시집 / 얼마간은 불량하게

​낙화 / 조지훈

그림 / 이경희 ​ ​ ​낙화 / 조지훈​ ​ ​ ​ ​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 ​ ​ 시집 / 애송시 100편 ​ ​ ​ ​

​살아 있다는 것 / 드니스 레버토프

그림 / 박혜숙 ​ ​​ ​ 살아 있다는 것 / 드니스 레버토프 ​ ​ ​ 잎사귀와 풀잎 속 불이 너무나 푸르다, 마치 여름마다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 바람 불어와, 햇빛 속에 전율하는 잎들, 마치 모든 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연약한 발과 긴 꼬리로 꿈꾸는 듯 움직이는 붉은색 도룡뇽 ​ 너무 잡기 쉽고, 너무 차가워 손을 펼쳐 놓아준다, 마치 ​ 매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 ​ ​ ​ 시집 / 마음 챙김의 시 ​ ​ ​

바람이고 싶다 / 전길중

그림 / 문지은 바람이고 싶다 / 전길중 안개꽃에 둘러싸인 장미꽃 그 속에 잠든 바람이고 싶다 잠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더우나 추우나 떨림을 지니고 누군가에 안기고 싶은 바람이다 꾸밈없는 얼굴 투명한 마음 신성한 야성 잠시의 멈춤도 허용되지 않아 방향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이다 지치면 어느 숲에 머물러 아픔을 다독이는 바람이고 싶다 *바람은 멈추는 순간 죽음이다 시집 / 그까짓게 뭐라고

부리와 뿌리 / 김 명 철

그림 / 서 순 태 ​ ​ ​ ​ ​ ​ 부리와 뿌리 / 김 명 철 ​ ​ ​ 바람이 가을을 끌고와 새가 날면 안으로 울리던 나무의 소리는 밖을 향한다 나무의 날개가 돋아날 자리에 푸른 밤이 온다 ​ ​ 새의 입김과 나무의 입김이 서로 섞일 때 무거운 구름이 비를 뿌리고 푸른 밤의 눈빛으로 나무는 날개를 단다 ​ ​ 새가 나무의 날개를 스칠 때 새의 뿌리가 내릴 자리에서 휘바람 소리가 난다 나무가 바람을 타고 싶듯이 새는 뿌리를 타고 싶다 ​ ​ 밤을 새워 새는 나무의 날개에 뿌리를 내리며 하늘로 깊이 떨어진다 ​ ​ ​ ​ 김명철 시집 / 짧게, 카운터펀치 ​ ​ ​ ​

오래된 가을 / 천 양 희

그림 / 한 정 림 ​ ​ ​ ​ 오래된 가을 / 천 양 희 ​ 돌 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 출생 / 1942년 1월 21일 , 부산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데뷔 / 1965년 현대문학 '정원 한때' 등단 수상 / 2017.10. 통영문학상 시상식 청마문학상 ​ ​ ​ ​ ​

깊은 숲 / 강 윤 후

그림 / 강 은 영 ​ ​ ​ 깊은 숲 / 강 윤 후 ​ ​ 나무들이 울창한 생각 끝에 어두워진다 김 서린 거울을 닦듯 나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걷으며 나아간다 깊이 들어갈수록 숲은 등을 내보이며 ​ 멀어지기만 한다 저 너머에 내가 길을 잃고서야 닿을 수 있는 집이라도 한 채 숨어 있다는 말인가 문 열면 바다로 통하는 집을 저 숲은 품에 안고 성큼 성큼 앞서 가는 것인가 마른 잎이 힘 다한 바람을 슬며시 ​ 내려놓는다 길 잃은 마음이 숲에 들어 더 깊은 숲을 본다 ​ ​ ​ ​ *출생 : 1962, 서울 *학력 :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력 : 우송공업대학 (문예창작과조교수) ​ ​ ​ ​

두렵지만 머물고 싶은 시간 / 은 시 영

그림 / 박 종 식 ​ ​ ​ ​ 두렵지만 머물고 싶은 시간 / 은 시 영 ​ ​ ​ 두렵지만 머물고 싶은 시간 그건 사랑의 시간이었다. ​ 바람은 언제나 나에게 속삭임으로 진실을 말해줬지만 ​ 나는 바람의 진실을 듣지 않았다. ​ 그리고는 또 이렇게 아픈 시간들이 나를 지나간다. ​ 나의 눈물은 시가 되고 시는 그대가 되어 다시 내 안에 머문다. ​ 그리고 눈물 가득한 나에게 바람은 다시 속삭여준다. ​ 눈물, 그것은 아무나 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 늦은 것도 같지만 이번 바람의 위로를 나는 놓치기 싫었다. ​ ​ ​ ​ ​ ( 신춘문예 당선작 / 2021, 경인일보 ) ​ ​ ​

들국화 / 천 상 병

그림 / 김 정 수 ​ ​ ​ ​ 들국화 / 천 상 병 ​ ​ ​ 산등선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 가을은 다시 올 테지. ​ 다시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 ​ ​ ​ *1930년 일본에서 출생 *1945년 김춘수 시인 주선으로 문예지에 추천됨 *1954년 서울대 상과대 수료 *1971년 유고시집 발간 *시집 *1993년 4월 28일 별세.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