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193

2025, 미네르바 신인상 / 이효

부처가된 노가리 / 이 효 장엄한 일출을 숯불에 굽는다벌겋게 익어버린 노을 질긴 바다를 굽고 또 굽는다쪼그라든 몸통, 가시는 슬픔의 무게를 던다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짭짤한 맛, 고단한 날들의 바람바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식탁에 놓인 고뇌의 모서리 씹힐 때마다 걸리는 가시거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휘우듬한 등은 일어서지 못한다 실핏줄도 막혀버린 어제와 오늘수심 깊은 시퍼름이 울컥 올라온다 바다를 잃어버린다는 것은출렁이는 꼬리가 잘린 것 부드럽게 짓이긴 속살누군가의 입에서 상냥한 저녁이 된다  허공을 움켜잡은 바다의 조각들수상한 부처가 되어간다   단팥죽의 비밀 / 이 효  끈적한 남자의 눈은 겨울이다동동 떠 있는 하얀 눈동자 초점 잃은 아버지다 불안한 내 손은 탁자 아래서 울컹거리는 안부를 갉아먹는다 ..

당신의 금은 괜찮은지요 / 이효

그림 / 이석보​​당신의 금은 괜찮은지요 / 이효​​초등학교 3학년 5반, 반이 바뀌고가슴이 콩닥거릴 시간도 없이 순간, 내 생애 최초로 받은 경계선  칼로 그은 직선 하나 앞에 무참하게 잘려나간 지우개 하나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에 금이 남아있다 선배 주선으로 나간 미팅잘 생긴 청년이 신청한 애프터가슴이 콩닥거렸지만 선을 그었다  그놈이 바로 그 자리에 나왔다 저울로 달아 돌려보낸 거절의 선  그런 내게 어머니는 호미로 선을 그으며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셨다 사람들은 가슴속에 저마다 지워야 할 금이 있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 효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 효​​​잊혀진 한 사람이 그리울 때 안부는 붉다 시작과 끝은 어디쯤일까 헤어질 때, 떨어진 저 침묵 루주가 진해질수록 그리움의 변명은 파랗다 인연은 호수에 배를 띄워 다가가는 것 거울 앞 침침한 시간들 부러진 루주 끝에도 심장은 뛴다  내가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은  슬픔과 후회가 거기 있기 때문 운명을 바른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묵과 어머니 / 이효

묵과 어머니 / 이효간병인이 사라진 날 척추가 불안한 어머니 집 딸만 보면 묵을 쑨다 수직 궤도 벗어난 꼬부라진 허리 싱크대에 매달려 추가 된다 끈끈한 묵 나무 주걱으로 세월만큼 휘젓는다 불 줄여라 엄마의 잔소리는 마른 젖 오래 저어라 끈기 있게 살라는 말씀 쫀득하다 어머니 묵 그릇 같은 유언 눈동자에 싸서 집으로 가져온다 풀어보니 검게 탄 일생이 누워 있다 입안에서 엄마 생각이 물컹거린다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숟가락을 놓다 / 이 효

그림 / 정도나숟가락을 놓다 / 이 효​낡은 부엌문 바람이 두들기는데빈 그릇에 바람 소리 말을 더듬고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둥근 밥상에 수저 두 개 올려놓고비린내 나는 생선을 굽는다할머니 나물 팔던 손으로부엌문 활짝 열어 놓았다​바람은 잠시 단추를 채우고 나간다그림자 된 춥고 외로운 사람들쓰러진 술병처럼 몸이 얼었다 녹는다산산이 발려진 생선 가시의 잔해들​무표정한 가시를 모아 땅에 묻는다상처 난 것들 위로 첫눈이 내린다​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부엌에 온기를 넣는 것​​​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

뭉크의 절규 / 이효

뭉크의 절규 /  이효두렵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어미를 넘어트린 덩치 큰 염소칠판 위에 붙은 교훈 분필 가루가 되어 교실 안이 술렁인다무질서는 유죄일까? 무죄일까?옆구리 차기로 운동화 날아오고 교사의 비명은 털이 뽑혔다글썽인다, 겁에 질린 어린 눈망울들밟지 말아야 할 스승의 그림자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되어 밟힌 지 오래다 병원으로 실려간 어미는 암막 커튼을 친다다시 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뭉크는 불안한 내일을 다시 부르고 있다이효 시인  / 장미는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