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204

폭포를 복사하다 / 이 효

그림 / 조희성​​​폭포를 복사하다​ 이 효​​ 거대한 절벽의 엔진 소리브레이크 없는 직선 절망으로 헝클어진 물줄기 남자의 휴대폰 속 우울증 물 먹은 웅크린 빚 독촉장 누가 남자의 하늘에 회색 페인트칠을 해 놓았을까꽃무늬가 삭제된 신혼의 반지하 커튼 밤마다 폭포를 내려다보며 수천 번도 더 타전했을 그택배원의 하루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솟구치는 이자는 수천 수백의 물방울 순간, 뜨거운 피가 물에 섞이는 상상을 한다 폭포의 거대한 회전문이 열리고 낙태되지 않는 생명, 뿜어 오르는 양수 햇살은 바위에 갇힌 울음을 꺼내주고 희망의 폭포를 다시 너에게 복사한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숲에 서다 / 이 효

​​숲에 서다 / 이 효​​ 이른 아침 숲에 든다 테크론보다 질긴 생명력을 지닌 칡넝쿨 ​오르고 또 올라서 넝쿨 아래 나무들 한 조각의 빛 눅눅해진다 푸른 투망에 갇힌 나무들 ​힘 있는 자여 절망의 잎 덮지 말아라 햇살은 누군가에게 지푸라기 같은 양식이다 ​숲에서 나오는 길 내 신발 밑에도 칡꽃이 가득 묻었다 ​​숲은 내게 살아있는 경전이다​​​이효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드라이플라워 / 이 효

드라이플라워 / 이 효 내가 붉은 것은 당신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시가 있는 것은 나를 건들지 말라는 까닭입니다 언젠가는 타오르던 그 사랑도 시들겠지만 당신이 떠나면 슬픔 속 나는 마른 가시가 됩니다 사랑이 떠나도 견디게 하는 것은 향기가 남아서겠지요 오늘, 슬픔을 곱게 말립니다 오! 장미여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베이비박스 / 이효

​베이비박스 창고 바닥에 죽어있는 새 한 마리 출산 기록은 숲에 있지만 출생 신고는 나무에 없다 유령이 된 새, 텅 빈 베이비박스 창문 밖의 모진 말들은 쪼글거린다 비를 맞고 날개를 접었나 봐, 굶어 죽은 거야 죽은 아기새 주위로 작은 벌레들이 조문을 온다 작은 종이 상자에 넣어 묻어 주려고 새의 날개를 드는 순간 구더기가 바글거린다 여린 살을 파고드는 고통, 어제와 오늘이 뜯겼다 외면과 무관심의 순간, 살점은 제물이 된 거야 다시는 푸른 숲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죽음에 이르러 알게 된 세상 불온한 도시에서 불온한 사랑이 미등록된 출생신고 죄책감마저도 씹어 먹은 도시의 슬픔들 말문을 닫은 모진 에미를 대신해 7월의 하늘은 수문을 연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6월의 혈관 / 이 효

6월의 혈관 / 이 효​​​​가시 돋은 피가 온몸을 할퀴며 간다 몸은 거대한 산맥 장기들 깊숙이 흐르는 진한 사색은 한평생 그가 살아온 길을 흑장미로 출력한다 주삿바늘은 부질없는 것들을 기억하고돌아누운 벽은 무채색 숨소리로 흐느낀다 명함 하나 없는 삶도주머니가 깊지 못한 삶도 끈질기고 싶은 순간이다 혈관을 타고 도는 과거의 연민은 피의 가시에 수없이 찔린다 새벽마다 짐승의 힘으로 뿔로 세상을 밀고 달린 남자 하루를 중얼거린 무너진 산은 급한 내일을 수혈받는다 먼 산, 6월의 혈관은 시퍼런 울음 누른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네 이름은 아직 붉다

강진고을 (강진 신문) 네 이름은 아직 붉다 / 이 효 동백, 그 이름으로 붉게 피는 말숨결이 꽃잎 같은 집뒤뜰엔 백 년 묵은 동백나무 붉은 침묵으로 피었다 짧고도 깊은숨,모두를 품고 떨어지는 꽃그날 너를 위해 목을 매었던 순간도내겐 시 한 줄 강진의 바람이 불 때마다나의 입술을 조용히 불러다오사랑이었다고 그것이 조국이었다고 붉게 피는 말들은 쓰러지지 않는 붉은 네 이름

벚꽃 2 / 이효

벚꽃 2 / 이효 ​봄의 폭설을 보아라 아름답다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내 입술이 벌어져 꽃이 되었다 그냥 울어 버릴까하얗게 뿌려놓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꿈속을 거닐 듯 내 앞에 펼쳐진 그리움의 연서를소리 없이 읽는다 바람에 꽃잎 하나 날아와내 입술에 짧은 키스 남기고 떠나면시간은 영원한 봄날이 된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시간이 멈춘 듯 / 이 효

시간이 멈춘 듯 / 이 효 햇살이 속삭이듯 스며들고마음엔 조용히 눈이 내린다라벤더 향기 짙어진 유월안개처럼 흩어지는 그리움그림자도 지워진 너의 모습보랏빛 물결만 출렁이고잔향 속에 말라 가는 잎사귀내 심장처럼 떨린다떼어낼 수 없는 잎들시든 청춘의 결처럼 메말라손끝으로 조심스레 만져본다추억은,시간을 잊은 창문 넘어 잠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