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 1428

시간을 핀셋으로 집어올리다 / 동시영

그림 / 이혜인 ​ ​ 시간을 핀셋으로 집어올리다 / 동시영 ​ ​ 시간을 핀셋으로 집어올린다 ​ ‘도대체’가 큰 눈 뜨고 놀란다 구경하던 하늘 껍질, 구름도 꿈틀한다 ​ 방도 없고 집도 없고 들어감도 없는 ‘지금 ’은 경계 ​ 이름 붙여 있어도 무엇인지 모르는 물건 같은 사람들이 네 네 대답하며 반항한다 지금의 등을 긁어 준다 ​ 닳는 것은 닦는 것 반짝이는 것 조약돌 시간 등불 시간 눈동자 여기서 처음까지 내다본다 ​ 덩굴손 유월이, 계곡물 곡선 시계 건너, 어디론가 가고 있다..

봄을 붙인다 / 이효

그림 / 이경희봄을 붙인다 이효벽이 나를 가둔 곳에꽃과 새들이 몰려온다할퀸 상처를 뜯어내고말갛게 씻은 풍경을 풀어살갗이 오른 벽지를 붙인다서로를 읽지 못한 시간들끈적한 울음을 붓질하고벽지 뒷면에 절망을 지운다곰팡이가 핀 시어들햇살과 바람에 말려 창가에 널면벽 모퉁이에 노란 팬지가 자란다천장에 거꾸로 피는 꽃들줄기는 자라 벽을 타고 내려와방안에는 웃음꽃이 핀다봄은 누군가의 마음에 꽃이 자라도록향기를 바르는 일끈끈한 속살이 창문 안에 차오르는 일이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내레이션 / 이효

그림 / 김지수내레이션 / 이효 천년을 앞산과 눈 맞춤하더니 여자는 꽃으로 타들어 간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누군가 일 년을 기다리지 못한 사랑 수없이 벙긋거린 입들 밤마다 별을 보고 달을 보았을 가슴속에 꾹꾹 누른 천년 붉게 달덩이 피어오른 불암산 서로의 가시를 눈 안에 앉히는 가시가 녹아 꽃봉오리 펼치는 서로의 강에 비춰보는 온몸으로 전하는 4월의 환희 이효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피가 피다 / 김혜순

그림 / 박정자피가 피다 / 김혜순 재봉틀 바늘처럼 따라오는 빗줄기를 피해 달아나다가모퉁이 돌아 몸속에서 붉은 벽돌을 꺼내 담 쌓아가다가 가로등이 따끔따끔 켜지며 쫓아오면 더 힘껏 달아나다가 마음 급한 매미들이 길을 썰어대는 소리 귀 기울여 듣다가 발목에 쥐날 때처럼 저 멀리 빌딩의 창문들이 환하게 켜지면 빨간 콧구멍 흰 고양이가 담장 밑으로 코피를 떨어뜨리는 것 바라보다가 광목 한 필 펼친 것 같은 희디흰 담장에 빨갛게 맺히다가 바늘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가 실핏줄을 끌고 다시 나오면 혈관이 부풀어 솟구치고 한 송이 두 송이 참지 못하다가 땀구멍마다 앗 따가 앗 따가 가시가 따라 나오다가 흰 고양이의 입속에 머리를 빼앗긴 어린 새 한 마리 내 손에 들린 작고 붉은 심장이 푸드덕거리다가 앞길이 구만리 장미..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졸업반 / 김남주 우리는 술에 취해 무궁화무궁화 흙바닥에 선을 죽 그어놓고 꽃이 피었습니다 내가 술래,무궁화는커녕 나무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너희들은 내게 다가온다 한 발 두 발시치미를 떼며 나는 노래를 부른다 전주도 후렴도 없는 첫 소절이 마지막 소절인 그러니까 반복해서 불러야 해 노래가 끝나지 않도록놀이가 끝나지 않도록 한 소절이 노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노래보다는 구호에 가까운 한 문장을 우리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집 안에는 우리가 없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뒤의 인기척무엇인가 오고 있다손가락과 손가락이 끊어지는 서늘함 우리들은 달린다우리가 그어놓은 출발선을 향해 저기서부터 출발이야,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울지 마 울지 마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모..

가장 낮은 몸짓 / 문영하

가장 낮은 몸짓 / 문영하등나무 그늘에 앉아등꽃 떨어진 곳을 바라본다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애벌레 한 마리나를 찾아꿈속으로 기어오는 우리 아기배밀이다가장 낮은 곳에서가장 낮은 것이 세상을 향해온몸으로 돌진한다바로 저것이다벌레가 몸소 가르쳐 주는 세상 읽기등꽃 그늘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문영하 시집 / 네 시 반 창문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