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장미는고양이다 35

봄을 붙인다 / 이효

그림 / 이경희봄을 붙인다 이효벽이 나를 가둔 곳에꽃과 새들이 몰려온다할퀸 상처를 뜯어내고말갛게 씻은 풍경을 풀어살갗이 오른 벽지를 붙인다서로를 읽지 못한 시간들끈적한 울음을 붓질하고벽지 뒷면에 절망을 지운다곰팡이가 핀 시어들햇살과 바람에 말려 창가에 널면벽 모퉁이에 노란 팬지가 자란다천장에 거꾸로 피는 꽃들줄기는 자라 벽을 타고 내려와방안에는 웃음꽃이 핀다봄은 누군가의 마음에 꽃이 자라도록향기를 바르는 일끈끈한 속살이 창문 안에 차오르는 일이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맨발의 시월 / 이효

맨발의 시월 이 효자유분방한 동거는 끝난 것인가초록으로 엉겨 붙었던 뜨거운 알몸은 가고가을은 시간이 벗어놓은 꽃신으로 온다언약은 여자의 눈동자 속에서 시들고주소를 잃어버린 쓸쓸한 나뭇잎들가을비는 발가락 사이, 단조로 스며들고나무에 매달린 열차표 한 장 푸르륵 떤다붉은 치맛자락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바람을 잡는 것은 사랑이다 아니다나뭇가지의 사라진 춤사위가 너다뚝, 뚝 바닥에 뒹구는 상념들맨발의 시월, 나는 숲에서 사랑을 잃고가을밤을 해금 소리로 노랗게 물들인다다시는 숲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한여름을 보낸 가을도 나처럼 벌겋게 운다2020년『신문예』2025년『미네르바』신인상인사동시인협회 부회장, 국제PEN한국본부 회원한국문인협회 회원, 노..

달항아리 / 권갑하

그림 / 서희경​​​​달항아리 / 권갑하-엄마달​​엄마~하고 부르면금방 달려나오실 듯​정든 집지붕 위로둥근 달이 떠오른다​추억은낡고 삭아도변함없는 엄마달​......................................................................................................​​​달항아리 / 권갑하-포용​​삶이 무거울 땐속 숨 크게 고르고​가만히 가슴 열고숨결 깊이 품어보면​없는 듯흐르는 눈물내 안 깊이 번지리​​​​마음꽃 달항아리 / 권갑하 달항아리 연작 단시조집 ​​​​​​

벨 에포크*

벨 에포크* -미셸 들라크루아전 / 이 효​​​네모난 세상에 눈이 내린다전쟁은 하늘에 회색 눈썹을 단다총 든 사람은 세상을 맹수로 그리지만미셸은 붓으로 평화를 그린다 당신의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언제였나화가는 강아지로 행복을 싸인한다유년의 크리스마스는 초록 스카프를 매고 춤을 춘다 파리의 백 년 전 모습은명암으로 외투를 벗는다풍차는 돌며 세상 그림자를 지우고마차 밖 키스는 양산을 쓴다 노을을 들추면 늙은 화가의 그믐달이 나온다녹아내리는 시간 앞에서 붓을 잡는다 누가, 마지막 정거장에 봄을 켜주실래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프랑스어​​​​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더벅머리 여름 / 이효

그림 / 백용준​​​더벅머리 여름 / 이효 ​ 물속에서 소리와 빛깔을 터트린다도시인들 자존심도 태양 아래서 가식의 옷을 벗는다 영혼이 푸른 더벅머리 나무 위로 하얀 물고기들 흘러간다도시의 자존심을 물에 헹군다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더벅머리 아이들 여름이 가위로 잘려나가기 전 다시 한번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슬픈 도시를 영롱한 눈빛으로 채운다​​​​이효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춘천 호반​

나트랑 가다 / 이효

그림 / Galina Lintz 나트랑 가다 / 이효 구름은 여행자의 꿈을 싣고비행기 의자는 고단한 하루를 눕힌다 바다를 건너온 지친 마음은잠시 유실물 보관소에 맡긴다 오후 3시로 기운 낯선 풍경코를 세운 비행장의 이국적 내음 저녁을 먹고 찾아간 베트남 재래시장 유순한 망고는 노란 겉옷을 벗고 나트랑의 향기를 움켜잡는 바나나는 손을 펼쳐 악수를 청한다 잡을까 말까하기야 인생 노랗게 익었으면 그만이지 모국어는 타국에서도 귓전에 꽂힌다“천 원이요” “천 원” 호주머니에서 꺼낸 구겨진 화폐퇴계 이황의 얼굴이 슬픈 저녁이다

매미 / 이 효

그림 / 조희승​​​매미 / 이 효​​​목이 찢어지게 우는 그늘이 없는 배경벗고 또 벗은 여름은 뜨거운 13평 캄캄한 진흙 속, 날개의 불협화음가난의 살 떨림은 무죄다 임대 아파트를 뚫고 나온 본능날개에 기생하는 대출이자 울음은 뼈가 드러난 7월의 비명고열을 앓는 아스팔트 위, 허물 벗은 죽음 하나 지나가는 사람들 발밑에 매달린 무례한 귀발소리, 숨소리 사라진 무채색이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폭포를 복사하다 / 이 효

그림 / 조희성​​​폭포를 복사하다​ 이 효​​ 거대한 절벽의 엔진 소리브레이크 없는 직선 절망으로 헝클어진 물줄기 남자의 휴대폰 속 우울증 물 먹은 웅크린 빚 독촉장 누가 남자의 하늘에 회색 페인트칠을 해 놓았을까꽃무늬가 삭제된 신혼의 반지하 커튼 밤마다 폭포를 내려다보며 수천 번도 더 타전했을 그택배원의 하루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솟구치는 이자는 수천 수백의 물방울 순간, 뜨거운 피가 물에 섞이는 상상을 한다 폭포의 거대한 회전문이 열리고 낙태되지 않는 생명, 뿜어 오르는 양수 햇살은 바위에 갇힌 울음을 꺼내주고 희망의 폭포를 다시 너에게 복사한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드라이플라워 / 이 효

드라이플라워 / 이 효 내가 붉은 것은 당신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시가 있는 것은 나를 건들지 말라는 까닭입니다 언젠가는 타오르던 그 사랑도 시들겠지만 당신이 떠나면 슬픔 속 나는 마른 가시가 됩니다 사랑이 떠나도 견디게 하는 것은 향기가 남아서겠지요 오늘, 슬픔을 곱게 말립니다 오! 장미여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