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내려요 / 이효 새해가 내려요 / 이효 꿈틀거리는 지난 시간의 내장들끊어진 소통 위로 눈이 내린다 방전된 몸으로 새해를 넘어온 사람들아픈 손톱에 첫눈을 발라준다뽀얀 속살이 차곡차곡 쌓인 달력을 단다 말풍선에 매달린 섬들은 소통하고유리벽을 타는 용서가 녹아내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가 찰칵 찍어 놓은, 첫눈 오는 날핸드폰 속에서 풍겨오는 사람 내음눈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그렁한 눈발로 묻는다 까똑 까똑 까똑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2.20
콩고강 연가 / 이효 그림 / 박정실콩고강 연가 / 이 효 야자수는 홀로 노래 부른다고향은 외딴섬 수평선 너머 흑백 사진으로 몸살 앓는다 하루 종일 숲에서 서성이며고향의 소리를 더듬는다 마음 밭에 그리움이 붉다 숲은 한 방울의 눈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기억의 장소로 떠날 채비를 한다 섬과 섬 사이, 뼈마디로 다리를 놓는다홀로 출렁거렸을 침묵의 물결그리움은 먼 하늘이 된다 나무의 오랜 꿈, 석양에 쓰는 편지 슬프지만 잘 견디어 냈노라고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2.20
[박미섬의 홀리는 시집 읽기] 이효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 오월의 발톱'을 세우고 비광飛光의 춤을! 이효 시인 시인은 고통에서 치유를, 슬픔에서 기쁨을 끌어내는 존재다. 시를 사랑하는 존재이면서 시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존재다. 제2시집 ‘장미는 고양이다’에서 이효 시인은 황폐한 현대성을 넘어서는 위험한 사랑을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언어로 전해준다. 이는 ‘시인의 말’에 응축되어 있다. 눈동자에 빛이 들어온다 새벽을 통과한 나뭇가지들 잎맥은 속도를 기억한다 태양이 나뭇잎 위로 미끄러지면은빛으로 변한 들고양이들 飛光의 춤을 춘다(‘시인의 말’) ‘시인의 말’은 시집의 서문 격인 시. “태양이 나뭇잎 위로 미끄러지면” 들고양이들은 ‘비광’, 날아오르는 빛의 춤을 춘다.은빛으로 변한 들고양이들의 자태가 사뭇 날렵하다. 태양에서 ..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2.15
두부의 연가 / 이효 두부의 연가 / 이효 검정 비닐 속 뭉개진 두부는 버리지 마, 기울어지는 식탁 모서리냉장고 속에서 냉기를 먹는 하루 황금 들판을 기억하며멍석 위에서 슬픔을 말리는 여자 누군가 힘껏 내리친 도리깨꿈은 먼 하늘로 튕겨나간다 탁탁 탁탁탁 탁탁 탁탁모진 시간이 여자의 껍질을 벗긴다 차가운 물속에서 불은 낮과 밤 젖은 몸 일으켜 세운다 세상 오래 살다 보면 두부도 뭉개지잖아 여자의 무너진 몸이 우렁우렁 운다 서로의 얼굴에 생채기를 낸 저녁열 개의 손가락으로 만두를 다시 빚는다 무너진 사랑은 저버리는 게 아니야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2.05
감나무와 어머니 / 이효 감나무와 어머니 / 이효 당신과 함께 심었습니다손가락만 한 감나무 돌짝밭 손끝이 닳도록 함께 땅을 파내려 갔습니다 바람은 햇살을 끌어다 주고가족은 새벽을 밀었습니다 오늘, 그 감을 따야 하는데 당신은 가을과 함께 먼 곳으로떠나셨습니다 식탁 위 접시에 올려진 감 하나차마 입으로 깨물지 못합니다 한평생 자식들에게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을온몸으로 땅에 쓰고 가르치신 어머니 그렁한 내 눈은 붉은 감빛이 되었습니다 이효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1.11
더벅머리 여름 / 이 효 그림 / 백남성 더벅머리 여름 물속에서 소리와 빛깔을 터트린다도시인들 자존심도 태양 아래서 가식의 옷을 벗는다 영혼이 푸른 더벅머리 나무 위로 하얀 물고기들 흘러간다도시의 자존심을 물에 헹군다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더벅머리 아이들 여름이 가위로 잘려나가기 전 다시 한번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슬픈 도시를 영롱한 눈빛으로 채운다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1.04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효 그림 / 김정현 루주가 길을 나선다 / 이효 잊혀진 한 사람이 그리울 때 안부는 붉다 시작과 끝은 어디쯤일까 헤어질 때, 떨어진 저 침묵 루주가 진해질수록 그리움의 변명은 파랗다 인연은 호수에 배를 띄워 다가가는 것 거울 앞 침침한 시간들 부러진 루주 끝에도 심장은 뛴다 내가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은 슬픔과 후회가 거기 있기 때문 운명을 바른다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0.24
더 튤립 / 이효 그림 / 강애란 더 튤립 / 이효 암스테르담이 그리운 날은 꽃대 위로 지루한 시간이 선지처럼 붉게 흐른다 푸른 잎 뒤로 써 내려간땅속 깊이 묻어둔 고독 눈물의 무게 알뿌리로 자란다 아버지를 닮은 뿌리가 희망의 봄을, 불끈땅속에서 음표 하나 세운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0.13
꽃, 초인종을 누른다 / 이효 그림 / 김동신 꽃, 초인종을 누른다 / 이효 세상의 모든 꽃들 아름답다고 꽃병에 전부 꽂아둘 수는 없는 것 화병에 물을 주는 남자 말라가는 꽃에 초인종을 단다 야위어 가던 밤도 고독한 인연도 서로에게 비상벨이 된다 심장이 술렁거린다 내가 너의 등이 되어 주리라 그대를 가슴에 안고 절망의 시작, 고요의 끝을 본다 봄의 숲, 산짐승의 긴 울음 홀로 소리를 잘라내야 하는 순간 꽃에 초인종을 누른다 벗어 놓은 신발 속, 비번 풀린 꽃잎 가득하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0.04
장미는 고양이다 / 이효 장미는 고양이다 / 이효 그 사실을 장미는 알고 있을까 앙칼스러운 눈빛, 날 선 발톱, 애끓는 울음소리고혹적으로 오월의 태양을 찢는다 지붕 위로 빠르게 올라가 꼬리를 세운 계절고양이 모습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왕관을 벗어 던진 고고함이다 때로는 영혼의 단추를 풀어도찌를 듯한 발톱이 튀어나온다 왜 내게는 그런 날카로운 눈빛과 꼿꼿함이 없을까 내 심장은 언제나 멀건 물에 풀어놓은 듯미각을 잃는 혓바닥 같다 고양이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눈빛은 장미의 심장과 날카로운 가시의 고고함이다 고양이는 붉은 발톱으로 오월의 바람을 川 자로 할퀴고 간다 장미의 얼굴에는 오월의 핏빛이 칼날 위에 선다 나는 오월의 발톱을 기르고 있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https://youtu.be/3OSjHE.. 문학이야기/자작시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