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 이 효 그림 / 조희승매미 / 이 효목이 찢어지게 우는 그늘이 없는 배경벗고 또 벗은 여름은 뜨거운 13평 캄캄한 진흙 속, 날개의 불협화음가난의 살 떨림은 무죄다 임대 아파트를 뚫고 나온 본능날개에 기생하는 대출이자 울음은 뼈가 드러난 7월의 비명고열을 앓는 아스팔트 위, 허물 벗은 죽음 하나 지나가는 사람들 발밑에 매달린 무례한 귀발소리, 숨소리 사라진 무채색이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08:13:00
국수 가락을 달빛에 풀어 / 이효 그림 / 서희경국수 가락을 달빛에 풀어 / 이효반죽을 치댄다밀대로 하루를 납작하게 민다소리가 무성하게 자란 시장 안시퍼런 칼날에 잘려나간 시간양푼 안에는 민낯의 면발과청양고추 마늘이 스며든다아버지의 어깨는이방인들의 뜻 없는 대화로 기울어진다꿈에서 한 번쯤, 구름의 속살을 반죽해비행기를 타고 싶었을한평생 날아보지 못한 시퍼런 칼날두려움으로 받아냈을붉은 펜으로 가계부에 밑줄을 친 어제끊어진 내장들은 보들보들얼굴은 흥건한 달빛에 풀어지고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07.20
장미 / 이 효 이미지 출처 / Free 장미 / 이 효그대,붉은 향기로 왔다가젖은 가시만 남기고 가는꽃잎 떨어진 자리빗물 속, 기억을 더듬은 얼굴자꾸만 눈물로 지우니'처음'이 더 또렷해지는 이미지 출처 / Free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7.17
폭포를 복사하다 / 이 효 그림 / 조희성폭포를 복사하다 이 효 거대한 절벽의 엔진 소리브레이크 없는 직선 절망으로 헝클어진 물줄기 남자의 휴대폰 속 우울증 물 먹은 웅크린 빚 독촉장 누가 남자의 하늘에 회색 페인트칠을 해 놓았을까꽃무늬가 삭제된 신혼의 반지하 커튼 밤마다 폭포를 내려다보며 수천 번도 더 타전했을 그택배원의 하루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솟구치는 이자는 수천 수백의 물방울 순간, 뜨거운 피가 물에 섞이는 상상을 한다 폭포의 거대한 회전문이 열리고 낙태되지 않는 생명, 뿜어 오르는 양수 햇살은 바위에 갇힌 울음을 꺼내주고 희망의 폭포를 다시 너에게 복사한다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7.13
숲에 서다 / 이 효 숲에 서다 / 이 효 이른 아침 숲에 든다 테크론보다 질긴 생명력을 지닌 칡넝쿨 오르고 또 올라서 넝쿨 아래 나무들 한 조각의 빛 눅눅해진다 푸른 투망에 갇힌 나무들 힘 있는 자여 절망의 잎 덮지 말아라 햇살은 누군가에게 지푸라기 같은 양식이다 숲에서 나오는 길 내 신발 밑에도 칡꽃이 가득 묻었다 숲은 내게 살아있는 경전이다이효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7.11
드라이플라워 / 이 효 드라이플라워 / 이 효 내가 붉은 것은 당신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시가 있는 것은 나를 건들지 말라는 까닭입니다 언젠가는 타오르던 그 사랑도 시들겠지만 당신이 떠나면 슬픔 속 나는 마른 가시가 됩니다 사랑이 떠나도 견디게 하는 것은 향기가 남아서겠지요 오늘, 슬픔을 곱게 말립니다 오! 장미여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7.06
여름은 거울이다 / 이효 그림 / 전광옥 여름은 거울이다 이 효 벌은 연꽃 속으로 길을 내고 여자는 푸른 숲으로 길을 낸다 오래된 고목과 마주 앉아 수행하는 여자의 침묵은 맑다 연꽃은 물에 얼굴을 비춰보고 여자는 하늘에 마음을 비춰보고 여름은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6.22
내려 놓는다 / 이영광 내려 놓는다 / 이영광 역도 선수는 든다 비장하고 괴로운 얼굴로 숨을 끊고일단은 들어야 하지만 불끈 들어올린 다음 부들부들 부동자세로 버티는 건 선수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희한하게 힘이 남아돌아도 절대로 더 버티는 법이 없다 모든 역도 선수들은 현명하다내려놓는다 제 몸의 몇배나 되는 무게를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텅! 그것 참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다 저렇게 환한 얼굴로이영광 시인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98년 신인문학상 "빙의" 당선2003년 첫 시집 문학이야기/명시 2025.06.17
베이비박스 / 이효 베이비박스 창고 바닥에 죽어있는 새 한 마리 출산 기록은 숲에 있지만 출생 신고는 나무에 없다 유령이 된 새, 텅 빈 베이비박스 창문 밖의 모진 말들은 쪼글거린다 비를 맞고 날개를 접었나 봐, 굶어 죽은 거야 죽은 아기새 주위로 작은 벌레들이 조문을 온다 작은 종이 상자에 넣어 묻어 주려고 새의 날개를 드는 순간 구더기가 바글거린다 여린 살을 파고드는 고통, 어제와 오늘이 뜯겼다 외면과 무관심의 순간, 살점은 제물이 된 거야 다시는 푸른 숲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죽음에 이르러 알게 된 세상 불온한 도시에서 불온한 사랑이 미등록된 출생신고 죄책감마저도 씹어 먹은 도시의 슬픔들 말문을 닫은 모진 에미를 대신해 7월의 하늘은 수문을 연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5.06.16
소싸움 / 황인동 소싸움 / 황인동자 봐라!수놈이면 뭐니뭐니 해도 힘인기라돈이니 명예이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봐라, 저 싸움에 도취되어 출렁이는 파도를!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문학이야기/명시 202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