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78

시간을 핀셋으로 집어올리다 / 동시영

그림 / 이혜인 ​ ​ 시간을 핀셋으로 집어올리다 / 동시영 ​ ​ 시간을 핀셋으로 집어올린다 ​ ‘도대체’가 큰 눈 뜨고 놀란다 구경하던 하늘 껍질, 구름도 꿈틀한다 ​ 방도 없고 집도 없고 들어감도 없는 ‘지금 ’은 경계 ​ 이름 붙여 있어도 무엇인지 모르는 물건 같은 사람들이 네 네 대답하며 반항한다 지금의 등을 긁어 준다 ​ 닳는 것은 닦는 것 반짝이는 것 조약돌 시간 등불 시간 눈동자 여기서 처음까지 내다본다 ​ 덩굴손 유월이, 계곡물 곡선 시계 건너, 어디론가 가고 있다..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졸업반 / 김남주 우리는 술에 취해 무궁화무궁화 흙바닥에 선을 죽 그어놓고 꽃이 피었습니다 내가 술래,무궁화는커녕 나무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너희들은 내게 다가온다 한 발 두 발시치미를 떼며 나는 노래를 부른다 전주도 후렴도 없는 첫 소절이 마지막 소절인 그러니까 반복해서 불러야 해 노래가 끝나지 않도록놀이가 끝나지 않도록 한 소절이 노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노래보다는 구호에 가까운 한 문장을 우리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집 안에는 우리가 없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뒤의 인기척무엇인가 오고 있다손가락과 손가락이 끊어지는 서늘함 우리들은 달린다우리가 그어놓은 출발선을 향해 저기서부터 출발이야,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울지 마 울지 마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모..

가장 낮은 몸짓 / 문영하

가장 낮은 몸짓 / 문영하등나무 그늘에 앉아등꽃 떨어진 곳을 바라본다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애벌레 한 마리나를 찾아꿈속으로 기어오는 우리 아기배밀이다가장 낮은 곳에서가장 낮은 것이 세상을 향해온몸으로 돌진한다바로 저것이다벌레가 몸소 가르쳐 주는 세상 읽기등꽃 그늘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문영하 시집 / 네 시 반 창문 너머

Who am I ? 5

그림 / 서희경​​​​Who am I ? 5 박순 ​​​ 아스팔트에 붙은 발끝은 어디로 갈까 신념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오류투성이일 뿐 세상을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어둠 속에서만 열리는 동공 뿌연 거울 속에서 나만의 형식을 찾아 헤매 돌도 꽃도 나름의 언어로 세상을 향하는 것처럼 난 나에게 최면을 걸어 독한 것을, 유니크한 것을, 그로테스크한 것을 추앙하라고 절벽 앞에서 한 발짝 내디뎌 보라고 슬픔의 회오리 속으로 돌아가라고​​​​​-박순 시인 프로필-​2015년 계간 『시인정신』신인문학상 수상시인정신 우수작품상 수상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표창제2회 서울시민문학상 본상 수상..

달항아리 / 권갑하

그림 / 서희경​​​​달항아리 / 권갑하-엄마달​​엄마~하고 부르면금방 달려나오실 듯​정든 집지붕 위로둥근 달이 떠오른다​추억은낡고 삭아도변함없는 엄마달​......................................................................................................​​​달항아리 / 권갑하-포용​​삶이 무거울 땐속 숨 크게 고르고​가만히 가슴 열고숨결 깊이 품어보면​없는 듯흐르는 눈물내 안 깊이 번지리​​​​마음꽃 달항아리 / 권갑하 달항아리 연작 단시조집 ​​​​​​

내려 놓는다 / 이영광

내려 놓는다 / 이영광 역도 선수는 든다 비장하고 괴로운 얼굴로 숨을 끊고일단은 들어야 하지만 불끈 들어올린 다음 부들부들 부동자세로 버티는 건 선수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희한하게 힘이 남아돌아도 절대로 더 버티는 법이 없다 모든 역도 선수들은 현명하다내려놓는다 제 몸의 몇배나 되는 무게를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텅! 그것 참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다 저렇게 환한 얼굴로이영광 시인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98년 신인문학상 "빙의" 당선2003년 첫 시집

소싸움 / 황인동

소싸움 / 황인동자 봐라!수놈이면 뭐니뭐니 해도 힘인기라돈이니 명예이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봐라, 저 싸움에 도취되어 출렁이는 파도를!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202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그림 / 김정현 2025년 농민신문 신춘 당선 시 모란 경전 / 양점순 나비는 비문을 새기듯 천천히 자수 병풍에 든다 아주 먼 길이었다고 물그릇 물처럼 잔잔하다 햇빛 아지랑이 속에서 처음처럼 날아오른 나비 한 마리 침착하고 조용하게 모란꽃 속으로 모란꽃 따라 자라던 세상 사랑채 여인 도화의 웃음소리 대청마루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 모란 그늘 흩어지는 뒤뜰 흐드러지게 피는 웃음소리 그녀가 갈아놓은 먹물과 웃음을 찍어 난을 치고 나비를 그려 넣는 할아버지 ..

염천(炎天) / 마경덕

​염천(炎天) /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이놈아 그만 울어!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독하긴 매한가지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열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