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행복 / 유치환

그림 / 박은영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각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붙이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

명시 2022.09.25 10

치매-치매행 391 / 홍해리

그림 / 이중섭 치매-치매행 391 / 홍해리 이별은 연습을 해도 여전히 아프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아내는 치매 계단을 껑충껑충 건너뛰었다 "네가 치매를 알아?" "네 아내가, 네 남편이, 네 어머니가, 너를 몰라본다면!" 의지가 없는 낙엽처럼 조붓한 방에 홀로 누워만 있는 아내 문을 박차고 막무가내 나가려고들 때는 얼마나 막막했던가 울어서 될 일 하나 없는데 왜 날마다 속울음 울어야 하나 연습을 하는 이별도 여전히 아..

명시 2022.09.24 18

이별 / 괴테

그림 / 이신애 이별 / 괴테 이별의 말은 입이 아닌 눈으로 하리라. 견디기 어려운 이 쓰라림! 언제나 굳건히 살아왔건만. 달콤한 사랑의 징표도 헤어질 때는 슬픔이 되는 것을. 너의 키스는 차가워지고, 너의 손목은 힘이 없으니. 슬쩍 훔친 키스가 그때는 얼마나 황홀했던지! 이른 봄에 꺾었던 오랑캐꽃이 우리들의 기쁨이었던 것처럼 너를 위해 다시는 꽃도 장미도 꺾지 않으리. 프란치스카여, 지금은 봄이라지만 나는 쌀쌀한..

명시 2022.09.23 16

내 고향은요 / 지은경

그림 / 이왈종 내 고향은요 / 지은경 난, 고향이 어딘지 모릅니다 산이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바다라 기억되기도 합니다 풀꽃으로 태어난 나는 산에서 뿌리를  배우고 바다에서 하늘을 배웠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풀꽃들은 꽃을 피워내며 민주주의를 노래 부릅니다 고향이 어디냐고 또 물으신다면 내 고향은 대한민국이요 지구촌이요 꽃 피울 수 있는 곳은 모두 고향입니다 지은경 한영 시선집 / 사람아 사랑아

카테고리 없음 2022.09.23 25

뭉크의 절규 / 천보숙

그림 / 조원자 뭉크의 절규 / 천보숙 길게 누운 핏빛 노을이 온 세상을 덮는다 해도 핏빛 노을에 젖은 바다가 다시 하늘로 용솟음친다 해도 무심한 사람들은 가던 길 그냥 가고 기괴한 모습의 사나이 대각선을 지르는 널다리 타고 끝없이 달려오는 공포를 온몸으로 휘감으며 절규를 토해낸다 세상에 덥친 이 거대한 공포 끝없는 고통과 절망을 좀 보라고 *저작권 관계로 뭉크 그림 올리지 못합니다. 천보숙 시집 / 명화를 시로..

명시 2022.09.21 33

쉽게 쓰여진 시 / 서지영

그림 / 윤제우 쉽게 쓰여진 시 / 서지영 유관순 언니의 손톱도 잊었다 15초조차 슬프지 않다 테이블에 먹다 남은 간장치킨이 나뒹군다 온 채널이 먹방이다 바보가 바보 세상에서 똑똑해진다 도대체 배고픔과 피로와 창백함과 허무와 부조리와 pain은 어디에 있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손톱 밑 가시조차 없다 감각의 제국에 고통은 없다 온통 타이네놀 껍질뿐 하루가 잘 지나간다 시가 아주 쉽게 쓰여진다 서지영 시집 / 이 모든..

명시 2022.09.20 28

국화빵을굽는사내정호승

그림 / 최은미 국화빵을 굽는 사내 / 정호승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정호승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명시 2022.09.18 30

은빛 구 / 강위덕

그림 / 김환기 은빛 구 / 강위덕 은빛 구,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 마음처럼 모양이 동그랗다 바람은 고통의 순간을 수제비 구름처럼 몰려다니고 기포 속 은빛 바람은 깊은 바다에서 별이 되어 반짝인다 하늘과 땅 아래서 바람을 옷 입은 은빛 구, 그 속에 시를 생각하면 생은 얼마나 뜨거운 것인가 땀방울로 바다를 채워도 공허한 진실은 시를 보듬고 헤엄쳐 오른다 덩달아 하늘도 낮게낮게 내려온다 강위덕 시집 / 손톱이라는..

명시 2022.09.16 30

기쁨 / 괴테

그림 / 이왈종 기쁨 / 괴테 Die Freuden 우물가에서 잠자리 한 마리 명주 천 같은 고운 날개를 팔랑거리고 있다. 진하게 보이다가 연하게도 보인다. 카멜레온 같이 때로는 빨갛고 파랗게, 때로는 파랗고 초록으로. 아, 가까이 다가가서 그 빛깔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내 곁을 슬쩍 지나가서 잔잔한 버들가지에 앉는다. 아, 잡았다! 찬찬히 살펴보니 음울한 짙은 푸른빛. 온갖 기쁨을 분석하는 그대도 같은 경우를 맞게 되리라..

명시 2022.09.1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