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식탁 둘레 / 감태준

푸른 언덕 2023. 9. 9. 07:39

그림 / 서귀자

식탁 둘레 / 감태준

식탁 둘레에 모여 있는 의자들을 본다.

다들 조용하다.

두 딸은 시집가고

아내는 늦은 아들을 기다리다 방에 들고,

나는 슬그머니 아내의 의자에 가서 앉아 본다.

아들 옆 이 자리에서

아내는 밥 먹는 식구들을 둘러보았으리.

아침상에 나오지 않는 두 딸의 의자를 보고

아픈 젖을 한 번 더 떼기로 하였으리.

그런 날이 또 올 것이다.

그때에도 아내는 또 한 젖을 떼며

의자 구석구석을 닦고 문질러 윤을 내고 있으리.

불을 끄면 식탁 둘레가 더 적막할 것 같다.

불을 끈다,

아내의 얼굴이 꺼지지 않는다.

집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사화집>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오의 언덕 / 서정주  (2) 2023.09.12
유리창 / 정지용  (4) 2023.09.11
세잔과 용서 / 박지일  (3) 2023.09.07
아침의 마음 / 오은  (2) 2023.09.06
자동 판매기 / 최승호  (4)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