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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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少女像 / 송영택

그림 / 자심 소녀상 少女像 / 송영택 이 밤은 나뭇잎이 지는 밤이다 생각할수록 다가오는 소리는 네가 오는 소리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소리다 지금은 울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가만히 어머니를 생각할 때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듯 내가 별을 마주 서면 잎이 진다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서 또 가까이서... 시집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 순간 / 피천득

그림 / 김기정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시집 / 마음이 예뻐지는 시

밤하늘 / 차창룡

그림 / 김기정 밤하늘 / 차창룡 산 위에서 올려다보니 별 서너 개 저기 또 하나 잡으려면 어느새 숨어버리는 이처럼 내 마음을 간지르는 저 별 손톱으로 꼭 눌러 죽이고 싶은 마음의 가려움 내려다보니 이토록 많은 별들 꿈꾸는 눈빛에게 시간은 더디 흐른다 밤새도록 흘러도 늘 제자리인 저 강물 속 강물 위 가라앉아 있는 떠 있는 어린 시절 손톱으로 눌러 죽인 수많은 별들 여기 와 살아 있다니 시집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낙화 / 조지훈

그림 / 이경희 ​ ​ ​낙화 / 조지훈​ ​ ​ ​ ​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 ​ ​ 시집 / 애송시 100편 ​ ​ ​ ​

별들은 따뜻하다 / 정 호 승

그림 / 권신아 ​ ​ ​ 별들은 따뜻하다 / 정 호 승 ​ ​ ​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 ​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그림 / 김 복 연​ ​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 글로리아 밴더빌트 ​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 눈과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는 풀처럼 사랑은 더디고도 종용한 것 내리다가 흩날리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씨앗이 싹트듯 달이 커지듯 천천히 ​ ​ ​ 시집 / 매일 시 한 잔 ​ ​ ​

푸른 밤 / 나 희 덕

그림 / 드미트리 홀린 (러시아) ​ ​ ​ 푸른 밤 / 나 희 덕 ​ ​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 김용택 시집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 ​ ​

​꽃과 별 / 나 태 주

그림 / 한 경 화 ​ ​ ​ 꽃과 별 / 나 태 주 ​ ​ 너에게 꽃 한 송이를 준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손에 그것이 있었을 뿐이다 ​ ​ 막다른 골목길을 가다가 맨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너였기 때문이다 ​ ​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어둔 밤하늘에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다만 내가 울고 있었을 뿐이다. ​ ​ ​ 시집 / 나태주 대표 시선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