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이효 12

숟가락을 놓다 / 이 효

그림 / 정도나숟가락을 놓다 / 이 효​낡은 부엌문 바람이 두들기는데빈 그릇에 바람 소리 말을 더듬고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둥근 밥상에 수저 두 개 올려놓고비린내 나는 생선을 굽는다할머니 나물 팔던 손으로부엌문 활짝 열어 놓았다​바람은 잠시 단추를 채우고 나간다그림자 된 춥고 외로운 사람들쓰러진 술병처럼 몸이 얼었다 녹는다산산이 발려진 생선 가시의 잔해들​무표정한 가시를 모아 땅에 묻는다상처 난 것들 위로 첫눈이 내린다​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부엌에 온기를 넣는 것​​​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

새해가 내려요 / 이효

새해가 내려요 / 이효 꿈틀거리는 지난 시간의 내장들끊어진 소통 위로 눈이 내린다 방전된 몸으로 새해를 넘어온 사람들아픈 손톱에 첫눈을 발라준다뽀얀 속살이 차곡차곡 쌓인 달력을 단다 말풍선에 매달린 섬들은 소통하고유리벽을 타는 용서가 녹아내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가 찰칵 찍어 놓은, 첫눈 오는 날핸드폰 속에서 풍겨오는 사람 내음눈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그렁한 눈발로 묻는다 까똑 까똑 까똑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콩고강 연가 / 이효

그림 / 박정실콩고강 연가 / 이 효 야자수는 홀로 노래 부른다고향은 외딴섬 수평선 너머 흑백 사진으로 몸살 앓는다 하루 종일 숲에서 서성이며고향의 소리를 더듬는다 마음 밭에 그리움이 붉다 숲은 한 방울의 눈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기억의 장소로 떠날 채비를 한다 섬과 섬 사이, 뼈마디로 다리를 놓는다홀로 출렁거렸을 침묵의 물결그리움은 먼 하늘이 된다 나무의 오랜 꿈, 석양에 쓰는 편지 슬프지만 잘 견디어 냈노라고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삼각 김밥 번호 / 이효

​삼각 김밥 번호 / 이효​ 수저와 수저 사이의 기다림은 독거노인의 긴 한숨  현관문 열어 놓고이봐 젊은이, 날 좀 앉혀주게나 뼈만 남은 휠체어 바퀴를 보며슬금슬금 사라지는 그림자들  뒤척이던 바퀴가 편의점 가는 날삼각 김밥 하나, 풀지 못하는 남자 하얀 밥과 김 따로, 내 자식들 같다남자의 일회용 눈물이 쏟아진다 검정 모서리 씹는 서녘의 한 입쪼그리고 앉은 시간이 중얼거린다 이젠, 삼각 김밥마저 을큰하다​​​이효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박미섬의 홀리는 시집 읽기] 이효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

오월의 발톱'을 세우고 비광飛光의 춤을!​  ​이효 시인​ ​시인은 고통에서 치유를, 슬픔에서 기쁨을 끌어내는 존재다. 시를 사랑하는 존재이면서 시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존재다. ​제2시집 ‘장미는 고양이다’에서 이효 시인은 황폐한 현대성을 넘어서는 위험한 사랑을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언어로 전해준다. 이는 ‘시인의 말’에 응축되어 있다.​ ​눈동자에 빛이 들어온다​ ​새벽을 통과한 나뭇가지들​ ​잎맥은 속도를 기억한다​ ​태양이 나뭇잎 위로 미끄러지면​은빛으로 변한 들고양이들​ ​飛光의 춤을 춘다​(‘시인의 말’)​ ​‘시인의 말’은 시집의 서문 격인 시. “태양이 나뭇잎 위로 미끄러지면” 들고양이들은 ‘비광’, 날아오르는 빛의 춤을 춘다.​은빛으로 변한 들고양이들의 자태가 사뭇 날렵하다.​ ​태양에서 ..

맨발 기차 / 이 효

그림 / 민병각 맨발 기차 / 이 효 동네에 휘어진 기차가 있다 빗물로 녹슨 선로 위에서 아이들은 외발 놀이 가위, 바위, 보 표정 없는 마네킹처럼 넘어가는 해 종착역의 꺼진 불빛은 눈알 빠진 인형 정거장이 사라진 태엽 풀린 기차 멈춰버린 음악, 깨진 유리창 구겨진 몸통은 달리고 싶은데 바퀴는 목발을 짚고 절뚝거린다 해는 떨어졌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맨발로 버티는 기차는 바람이 불어도 떠나는 아이들 목소리 잡지 못한다 철커덩, 청춘이 떠난 차가운 선로 위 여분의 숨결이 쌕쌕거린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벚꽃 엔딩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벚꽃 엔딩 / 이 효 ​ 마음에 몰래 사랑을 품은 게 무슨 죄라고 꽃잎 저리도 붉은가요 지난밤에 봄비 내리더니 흥건히 젖은 마음 붉게 호수에 펼쳐 놓았군요 머물지 못할 사랑이라면 구름으로 나룻배 띄워 소리 없이 떠나시구려 ​ 만개한 벚꽃은 꿈결 같았다. 간밤에 봄비 내리더니 춤추며 떨어지는 꽃잎들~ ​ 단 며칠만의 달콤한 사랑이었지만 내 평생 살아가는 동안 뜨거운 사랑 마음에 한 장 걸어놓고 살아가렵니다. ​

혼자 부르는 노래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혼자 부르는 노래 / 이 효 ​ 야자수는 혼자 노래 부른다 외딴섬에서 수평선 넘어 고향은 흐린 흑백 사진 ​ 하루 종일 숲에서 고독의 색과 소리를 찾는다 마음 밭에 붉은 불길이 고향을 향해서 일어선다. ​ 비가 그친 맑은 오후 숲은 한 방울의 눈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 기억의 장소로 떠날 준비를 한다 ​ 섬과 섬 사이 뼈마디로 다리를 놓는다 ​ 혼자 출렁이는 깊은 물결 그리움은 강물처럼 구름이 된다 ​ 야자수는 혼자 노래를 부른다. 나뭇가지로 석양에 쓰는 편지 슬프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

그림 / 이 승 희

그림 / 이 승 희 ​ ​ 가증스러운 눈물 / 이 효 ​ 하나님 당신의 제단 앞에서 거짓의 눈물 흘린 것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별들도 숨을 죽이고 자는 이 밤에 당신의 목소리 듣고 싶어 엎드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거짓 눈물을 흘렸어도 미워하지 마시고 용서하소서 당신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당신입니다 물고기들을 바다에서 춤추게 한 당신입니다 꽃들을 벌판에서 날개 한 당신입니다 ​ 아!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빛을 내신 분입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내 어미의 생명을 살려주소서 ​ 가증스런 눈물이라도 받아주소서 고마운 이웃님들^^ 푸른언덕 블로그를 잠시 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