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박미섬의 홀리는 시집 읽기] 이효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

푸른 언덕 2024. 12. 15. 22:53

 

오월의 발톱'을 세우고 비광飛光의 춤을!

 

 

이효 시인

 

시인은 고통에서 치유를, 슬픔에서 기쁨을 끌어내는 존재다. 시를 사랑하는 존재이면서 시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존재다.

제2시집 ‘장미는 고양이다’에서 이효 시인은 황폐한 현대성을 넘어서는 위험한 사랑을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언어로 전해준다. 이는 ‘시인의 말’에 응축되어 있다.

 

눈동자에 빛이 들어온다

 

새벽을 통과한 나뭇가지들

 

잎맥은 속도를 기억한다

 

태양이 나뭇잎 위로 미끄러지면

은빛으로 변한 들고양이들

 

飛光의 춤을 춘다

(‘시인의 말’)

 

‘시인의 말’은 시집의 서문 격인 시. “태양이 나뭇잎 위로 미끄러지면” 들고양이들은 ‘비광’, 날아오르는 빛의 춤을 춘다.

은빛으로 변한 들고양이들의 자태가 사뭇 날렵하다.

 

태양에서 뜨거움을 지우면 은빛이 된다. 빛나되 불타지 않는 은빛은 가볍고 은은하게 날아오르는 빛이다.

그 빛으로 인해 세상은 황홀한 꿈과 위험한 사랑의 세계로 변모한다.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

 

 

그 사실을 장미는 알고 있을까

 

앙칼스러운 눈빛, 날 선 발톱, 애끓는 울음소리

고혹적으로 오월의 태양을 찢는다

 

지붕 위로 빠르게 올라가 꼬리를 세운 계절

고양이 모습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왕관을 벗어 던진 고고함이다

 

때로는 영혼의 단추를 풀어도

찌를 듯한 발톱이 튀어나온다

 

왜 내게는 그런 날카로운 눈빛과 꼿꼿함이 없을까

 

내 심장은 언제나 멀건 물에 풀어놓은 듯

미각을 잃는 혓바닥 같다

 

고양이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눈빛은

장미의 심장과 날카로운 가시의 고고함이다

 

고양이는 붉은 발톱으로 오월의 바람을

川 자로 할퀴고 간다

장미의 얼굴에는 오월의 핏빛이 칼날 위에 선다

 

나는 오월의 발톱을 기르고 있다

(‘장미는 고양이다’)

 

지상엔 고양이를 닮은 존재가 있다. 시인은 장미로 보는 듯하다. 고양이는 “장미의 심장과 날카로운 가시”의 고고함을 지녔다.

고양이가 날아오르는 존재라면 장미는 피어나는 존재. 둘 다 심장과 가시로 무장한 채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차이점이라면 장미의 ‘왕관’. 지상의 무거운 왕관을 벗어 던지면? 장미는 “붉은 발톱으로 오월의 바람”을 할퀴는 고양이가 된다.

 

’나‘는 어떤가. 왕관을 벗어 던지고 “오월의 발톱”을 기르며 더 높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가 오르는 그곳은 날카로운 미각, 칼날 같은 핏빛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일 것이다. 나아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시적 자유와 해방의 공간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 시집은 고양이가 되고 싶은 장미가 "오월의 발톱"을 세우고 비광의 춤을 추는 공간이다.

 

시인은 이 시집으로 하유상 선생님이 제정한 제24회 황진이문학상 본상을 받았다. 황진이문학상은 한국 여성 시가 문학의 태두 황진이 문학 정신을 잇는 상.

심사위원들은 황폐한 현대성에서 위험한 심리를 새로운 어법과 시어로 표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효 시인

* 대한문인협회 회원

* 인사동시인협회 사무국장

* 제1회 서울시민문학상

* 제3회 아태문학상 수상

* 시집 ’당신의 숨 한 번‘ ’장미는 고양이다‘

박미섬parkmisu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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