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하늘 14

꽃들 내 곁에 와서 눕다 / 김영자

그림 / 손정희 ​ ​ ​ ​ 꽃들 내 곁에 와서 눕다 / 김영자 ​ ​ ​ ​ 투명한 것을 보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 하늘, 시, 꽃, 꽃을 보면 모두 입술에 대어 보고 싶다 의미 없이 건네주던 그의 사랑 하롱하롱 잎이지는 꽃이었을까 불투명한 속에 함몰되는 두 눈 욕망과 질투심과 시기에 눈알을 굴리며 상처가 괴어 아픈 흔적을 남긴다 상처 위에 상처가 덧나면 살들은 투명해지는 것인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추한 음부를 내보이는 꽃들 내 곁에 와서 눕다. ​ ​ ​ ​ 김영자 시집 / 문은 조금 열려 있다 ​ ​ ​ ​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 졸업 1991년 김경린 선생 추천, 월간 으로 등단 1993년 2000년 2014년 를 내다 ​ ​ ​ ..

우주의 그릇 / 이근배

그림 / 심재관 우주의 그릇 / 이근배 하늘이 이보다 높으랴 바다가 이보다 넓으랴 조선 백자 항아리 흰 옷의 백성들 희고 깨끗한 마음 담아 우주의 그릇을 지었구나 어느 천상의 궁궐이 어느 심해의 용궁이 이렇듯 웅대장엄하랴 꺼지지 않는 백의의 혼불이 해와 달보다 더 밝구나 오랜 이 땅의 역사 여기 불멸의 탑으로 서 있나니 우주 안에 또 하나의 우주이어라 2023년 1월 신문예 초대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역임 *경향, 서울, 조선, 동아, 한국일보 신춘문예 5관왕 *시집 외 전지연 작품

별들은 따뜻하다 / 정 호 승

그림 / 권신아 ​ ​ ​ 별들은 따뜻하다 / 정 호 승 ​ ​ ​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 ​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 ​

블루 / 나 호 열

그림 / 박 상 희 ​ ​ ​ 블루 / 나 호 열 ​ ​ ​ 투명한데 속이 보이지 않는 풍덩 빠지면 쪽물 들 것 같은데 물들지 않는, ​ 가슴이 넓은 너에게로 가면 나는 새가 되고 유유히 헤엄치는 인어가 되지 푸를 것 같은데 푸르지 않는 눈물처럼 너는 나의 하늘 너는 나의 바다 ​ 그저 푸름이지 푸름이지 되뇌면 푸릉푸릉 싹이 돋을 것 같은 ​ ​ 시집 /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나무 / 이 성 선

그림 / 이 성 순 ​ ​ ​ 나무 / 이 성 선 ​ ​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 줄을 더구나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나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 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이 떨고 있는 사람 하나 가지가 모두 현이 되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 ​ 시집 / 매일 시 한잔 ​ ​ ​ ​

새 1 / 이 남 우

​심정수 작품 (1) ​ 새 1 / 이 남 우 ​ ​ 들 논 트랙터 지나간 자리에 가지런히 꽂힌 나락 하늘 파란 구름은 눈에 잡히는 아버지 그리고 가슴에 스며오는 바람 이야기 차라리 구분하지 않았으면 내게 서러움이 없을 논두럭 새는 벌레 잡기에 지 생명 걸지만 보는 나 그 날갯짓에 목숨을 걸....... ​ ​ ​ 이남우 시집 : 나무 ​ ​ ​ ​ ​ ​ 심정수 작품 (6)

갈등 / 김 광 림

그림 : 김 현 경 ​ ​ ​ 갈등 / 김 광 림 ​ ​ 빚 탄로가 난 아내를 데불고 고속버스 온천으로 간다 십팔 년 만에 새삼 돌아보는 아내 수척한 강산이여 ​ 그동안 내 자식들을 등꽃처럼 매달아 놓고 배배 꼬인 줄기 까칠한 아내여 ​ 헤어지자고 나선 마음 위에 덩굴처럼 얽혀드는 아내의 손발 싸늘한 인연이여 ​ 허탕을 치면 바라보라고 하늘이 거기 걸려 있다 ​ 그대 이 세상에 왜 왔지? 빚 갚으러 ​ ​ ​ 시집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 ​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 호 승

김 민 정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 호 승 ​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거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 정호승 시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길 / 윤 동 주

​ 길 / 윤 동 주 ​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우리가 물이 되어 / 강 은 교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숮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이 작품은 강은교 시인이 젊은 시절에 쓴 시다. 고달픈 인생에 대해서, 허무한 사랑에 대해서 시인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이 시를 따라서 읽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