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영혼 15

마크 로스코와 나 2 / 한강

작품 / 전지연 마크 로스코와 나 2 / 한강 한 사람의 영혼을 갈아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를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치는 구름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한강 시집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 파블로 네루다

그림 / 오영희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 파블로 네루다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가슴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나의 날개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영혼 위에서 잠들고 있던 것은 나의 입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갑니다. 매일의 환상은 당신 속에 있습니다. 꽃관에 맺혀 있는 이슬처럼 당신은 가만히 다가옵니다.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때 당신은 지평선을 파들어가고, 그리고 파도처럼 영원히 떠나갑니다. 소나무 돚대처럼 당신은 바람을 통해 노래합니다. 길 떠난 나그네처럼 갑자기 당신은 슬픔에 잠겨 버립니다. 옛길처럼 당신은 언제나 다정하고, 산울림과 향수의 노래가 당신을 부드럽게 안아 줍니다. 당신의 영혼 속에서 잠들던 새들이 날아갈 때, 그때야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시집 / 시가 있..

비가 (3) / 이승희

그림 / 장주원 ​ ​ ​ ​ 비가 (3) / 이승희 ​ ​ ​ 너를 만나면 나의 가슴은 항상 물이된다 우수 띤 눈자욱 깊숙한 예감 ​ 온 몸으로 울며 쏟아놓은 마디마디 작은 조각인 양 영혼을 가른다 ​ 타던 가슴 제몫으로 사르고 이별 앞에선 아름다운 단절 ​ 끝내 어둠 내리면 등줄기 흐르는 조용한 비가 등불로 길거리에 내린다 ​ ​ ​ 이승희 시집 / 쓸쓸한 날의 자유 ​ ​ ​ ​

바람의 말 / 마종기

그림 / 정우민 ​ ​ ​ ​ 바람의 말 / 마종기 ​ ​ 우리 모두가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 생각지는 마. ​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 ​ 애송시 100편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 ​ ​ ​ ​

病 / 기 형 도

그림 / 안 호 범 ​ ​ ​ ​ 病 / 기 형 도 ​ ​ ​ ​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 ​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 ​ ​ ​ 기형도 시집 / 입 속의 검은 잎 ​ ​ ​ ​ ​

바람의 말 / 마종기

그림 / 원 효 준 ​ ​ ​ ​ ​ 바람의 말 / 마종기 ​ ​ ​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 ​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는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 ​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 ​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 *마종기 시인은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

상사화 / 홍해리

그림 / 김 정 수 ​ ​ ​ 상사화 / 홍해리 ​ ​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지 오명 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 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골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 ​ ​ ​

감자떡 / 이 상 국

그림 / 조 은 희 ​ ​ ​ ​ ​ 감자떡 / 이 상 국 ​ ​ ​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 ​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 물에 수십 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쪄서 우리를 먹이신다 ​ ​ ​ ​ ​

한 잎의 여자 / 오 규 원

그림 / 권 신 아 ​ ​ ​ 한 잎의 여자 / 오 규 원 ​ ​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 파불루 네루다

그림 / 안 영 숙 ​ ​ ​ ​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 파불루 네루다 ​ ​ ​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 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 변하고, 태어나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이 되는 것들을 위해, ​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과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 우리의 삶이 사위어 가면 그땐 우리에게 뿌리만 남고 바람은 증오처럼 차겠지. ​ 그땐 우리 껍데기를, 손톱을, 피를, 눈길을 바꾸자꾸나, 네가 내게 입 맞추면 난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빛을 팔리라. ​ 밤과 낮을 위해 그리고 영혼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 ​ ​ Pablo Neruda (파블루 네루다) *출생 1904년 7월 12일, 칠레 *사망 1973년 9월 23일 (향년 69세) *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