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소나무 15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 파블로 네루다

그림 / 오영희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 파블로 네루다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가슴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나의 날개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영혼 위에서 잠들고 있던 것은 나의 입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갑니다. 매일의 환상은 당신 속에 있습니다. 꽃관에 맺혀 있는 이슬처럼 당신은 가만히 다가옵니다.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때 당신은 지평선을 파들어가고, 그리고 파도처럼 영원히 떠나갑니다. 소나무 돚대처럼 당신은 바람을 통해 노래합니다. 길 떠난 나그네처럼 갑자기 당신은 슬픔에 잠겨 버립니다. 옛길처럼 당신은 언제나 다정하고, 산울림과 향수의 노래가 당신을 부드럽게 안아 줍니다. 당신의 영혼 속에서 잠들던 새들이 날아갈 때, 그때야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시집 / 시가 있..

대결 / 이 상 국

그림 / 김 정 수 ​ ​ ​ ​ 대결 / 이 상 국 ​ ​ ​ ​ 큰 눈 온 날 아침 부러져나간 소나무를 보면 눈부시다 ​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저 빛나는 자해(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 나는 때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 ​ 이상국 시집 / 국수가 먹고 싶다 ​ ​ ​

​시월을 추억함 / 나호열

그림 / 구 경 순 ​ ​ ​ ​시월을 추억함 / 나호열 서러운 나이 그 숨찬 마루턱에서 서서 입적(入寂)한 소나무를 바라본다 길 밖에 길이 있어 산비탈을 구르는 노을은 여기저기 몸을 남긴다 생(生)이란 그저 신(神)이 버린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풀꽃이었을까 하염없이 고개를 꺾는 죄스런 모습 아니야 아니야 머리 흔들 때마다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검은 씨앗들 타버린 눈물로 땅 위에 내려앉을 때 가야할 집 막막하구나 그렇다 그대 앞에 설 때 말하지 못하고 몸 뒤채며 서성이는 것 몇 백 년 울리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 나이었던가 향기(香氣)를 버리고 빛깔을 버리고 잎을 버리는 나이 텅 빈 기억 속으로 혼자 가는 발자국 소리 가득하구나 ​ ​ ​ ​

리기다소나무 / 정 호 승

그림 / 송 춘 희 ​ ​ 리기다소나무 / 정 호 승 ​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는 비로서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 ​ ​ 정호승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 ​ ​ ​ ​

눈물의 중력 / 신 철 규

그림 / 타니아 말모레호 ​ ​ 눈물의 중력 / 신 철 규 ​ ​ ​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 ​ ​ ​ 시집 /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

왕방산 산행 (포천)

​ 뜨거운 여름에 산행이 왠 말이냐고요? 그것도 737.2m 정상까지 헉~~ 소리 납니다. ​ ​ 자동차로 300m 정도, 오지재 고개까지 올라갑니다. 실제로는 정상까지 걸어서 400m 정도 올라갑니다. ​ ​ 왕방산은 오지재 고개에서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남쪽으로 올라가면 해룡산입니다. ​ ​ 아늑한 길이 폭신폭신합니다. 왕방산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산행을 할 수 있는 산입니다. 산이 떠오르는 해를 막아줍니다. ​ ​ 20분 정도는 힘들게 능선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나리꽃처럼 웃으면서 올라갑시다. ​ ​ 어마어마한 돌탑을 누가 쌓아 올렸을까요? 돌 하나에 소원 한 개씩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 ​ 능선에 올라오면 해를 살짝 등지고 걸어서 좋습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산입니다. ​..

수락산 (덕릉고개, 출발)

덕릉 고개에서 출발해서 수락산을 올랐다. 군부대를 지나서 오솔길로 들어섰다. 지난밤에 비가 내려서 하늘이 조금 흐렸다. 소나무에서 귀여운 솔방울이 올라온다. 조금 지나면 송홧가루가 날릴 것 같다. 소나무 한 그루가 산을 지킨다. 멀리서 올라온 손님들 쉬어가라고 벤치도 있다. 잠시 바위 위에서 푸른 녹음을 감상했다. 바위 위에 보라색 붓꽃이 피어있다.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나무 울타리도 잘해놓았다. 바위와 굽은 나무들이 보인다. 밧줄을 타고 신나게 올라갔다. 헉~내가 이렇게 날씬하지는 않은데 어쩌나? 바위 위에 거북이가 보인다. 하늘이 점점 맑아진다. 드디어 치마 바위에 도착했다. 치마 바위에서 내려도 보이는 아파트 숲들 운무가 서서히 물러나니 도솔봉이 보인다. 상계동 아파트 단지가 멀리서 보인다. 동쪽..

굽이 돌아가는 길 / 박노해

굽이 돌아가는 길 / 박 노 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시집 : 마음이 예뻐지는 시 (정지영의 내가 사랑하는 시) 우리가 가는 길이 항상 꽃길만은 아니다. 박..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 개불알꽃 사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헤어지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죽는 일 빼고 모두 연습이 필요하다 ​ 종지나물(미국 제비꽃) 소나기 내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달맞이꽃 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물 흐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가 바람 부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가 ​ 로도히폭시스 (설란) ​ ​ 사는 일 한 묶음이면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지 사랑하는 일 한번으로 보면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지 ​ ​ 안개꽃 (숙근 안개초) ​ ​그런데 우리는 항상 연습한다 몸으로 머리로 그리고 되먹지 못한 이성으로 연습의 끝이 어딘지 모르면서 ​ (다만 이미 가버린 시간이라는 사실만 알 뿐) ​​ 노란 민들레 ​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 ​ 사는 일 ..

무제 2 / 이 남 우

그림 : 천 지 수 ​ ​ 무제 2 / 이 남 우 ​ ​ 어머니 소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윤사월 봄은 왜 그리 깁니까 보리는 파랗게 패어 눈을 유혹하지만 오월이 오기 전에는 벨 수 없는 노릇 어린 자식 밥그릇은 커만 가는데 어머니는 보리밭 머리에서 송홧가루만 이고 있습니다 ​ 어머니 소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봄 햇살에 더욱 깊어 가는 주름은 차라리 기쁜 역사라하고 일 많은 오월에 보리타작 있어 서럽도록 기쁘지요 어린 자슥 밥그릇 채어줄 생각에 송화는 더 이상 꽃이 아닙니다 ​ 오늘, 소나무 끝마디마다 새순이 돋고 있습니다 어머니 ​ ​ 이남우 시집 : 나 무 ​ *이남우 시인은 2000년 십여 년 강화문학창립회원 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치악산 원주에서 시문학 '시연' 동인으로 활동한다. 국립방송통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