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어머니 22

냉이꽃 / 이근배

그림 주인공 / 페르디 난트 2세 대공 ​ ​ ​ 냉이꽃 / 이근배 ​ ​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거야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 ​ ​ 시집 /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애송 명시 ​

문학이야기/명시 2023.02.20 (23)

벽속의 어둠 / 이 효

그림 / 이경수 벽속의 어둠 / 이 효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도 잡고 싶습니다 나뭇잎도 작은 입김에 흔들리는데 아! 하나님 당신의 숨 한 번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하얀 침대 위 어머니 얼음이 되어간다. 태어나서 스스로 가장 무능하게 느껴진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초라함에 울음도 표정을 잃어버린다. 눈물마저 원망스러운데 창문 넘어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가지 끝 미세한 흔들림이 눈동자를 찌른다. 아니 그 떨림을 잡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가 눈발로 날린다. 당신의 숨 한 번 불어주시길~~ 오! 나의 어머니

항아리 / 이 효

그림 / 김정수 항아리 / 이 효 손길 닿지 않는 대들보에 항아리를 거신 아버지 까막눈 파지 줍는 아저씨 은행에 돈 맡길 줄 몰라 아버지께 당신을 건넨다 아버지 세상 떠나기 전 항아리 속에 꼬깃꼬깃한 돈 아저씨에게 쥐어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 긴 겨울이 꼬리 잘리고 다시 찾아온 가을 검정 비닐 들고 온 아저씨 홀로 계신 어머니께 두 손 내민다 비닐 속에는 붉게 터져버린 감이 벌겋게 들어앉아 울고 있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그, 날 / 이 효

그림 / 김 연경 그, 날 / 이 효 ​ 흰 눈이 쌓인 산골짝 한 사내의 울음소리가 계곡을 떠나 먼바다로 가는 물소리 같다 ​하늘 향해 날개를 폈던 푸른 나뭇잎들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 이유도 모른 채 목이 잘린 직장 ​어린 자식들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어 하얀 눈발에 내려갈 길이 까마득하다 ​ 어머니 같은 계곡물이 어여 내려가거라 하얀 눈 위에 길을 내어주신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소녀상 少女像 / 송영택

그림 / 자심 소녀상 少女像 / 송영택 이 밤은 나뭇잎이 지는 밤이다 생각할수록 다가오는 소리는 네가 오는 소리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소리다 지금은 울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가만히 어머니를 생각할 때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듯 내가 별을 마주 서면 잎이 진다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서 또 가까이서... 시집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8.27 (19)

꽃을 보려면 / 정 호 승

그림 / 문지은 ​ ​ ​ ​ 꽃을 보려면 / 정호승 ​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 ​ ​ 정호승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 ​ ​ ​ ​

밥해주러 간다 / 유안진

작품 / 서 윤 제 ​ ​ ​ ​ ​ 밥해주러 간다 / 유안진 ​ ​ ​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 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 ​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 ​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 ​ ​ ​ ​ ​ * 유안진 시인 약력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명예교수) *1965년 등단 *1970년 첫 시집 *1975년 *1998년 10회 정지용 문학상 *1990년 *2000년 *2013년 6회 목월문학상 수상 *2012년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 ​ ..

코뿔소 / 나 호 열

그림 / 박 삼 덕 ​ ​ ​ ​ 코뿔소 / 나 호 열 ​ ​ 둥글둥글 살아가려면 적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다가도 생존은 싸늘한 경쟁이라고 엄포도 놓으시던 어머님의 옳고도 지당하신 말씀 고루고루 새기다가 어느새 길 잃어 어른이 되었다 좌충우돌 그놈의 뿔 때문에 피헤서 가도 눈물이 나고 피하지 못하여 피 터지는 삿대질은 허공에 스러진다 이 가슴에 얹힌 묵직한 것 성냥불을 그어대도 불붙지 않는 나의 피 채찍을 휘둘러도 꿈적을 않는 고집불통 코뿔소다 힘 자랑하는 코뿔소들 쏟아지는 상처를 감싸쥐고 늪지대인 서울에 서식한다 코뿔소들이 몰래 버리는 이 냄새나는 누가 코뿔소의 눈물을 보았느냐 ​ ​ ​ ​

의자 / 이정록

그림 / 김 연 제 ​ ​ ​ ​​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 * 이정록 시집 / 의자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