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민들레 / 이효 사진 / 하얀 민들레 하얀 민들레 / 이효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민들레 밭에 무성한 풀들 모질게 과거를 뽑는 노모 언제 뽑았느냐는 듯 잡초는 그녀를 조롱하고 질기게 올라오는 상념들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빨리 죽어야 해 손주 닮은 하얀 꽃 때문에 목숨 줄, 꼭 잡고 있는 어머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3.07.23
수직의 무게 / 이 효 진도 수직의 무게 / 이 효 도시의 실핏줄 터트리고 달려온 남해 품을 내어준다 모래사장에 벗어 놓은 신발은 하루 끈을 느슨하게 푼다 한평생 리모컨이 되어 가족이 누른 수직의 무게로 인생의 물음표와 마침표를 견뎌야 했던 남자 치매 걸린 노모의 수다는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껍질 벗겨진 전선줄 천둥소리에 뼈대 하나 남긴다 코드가 헐거워진 저녁 남자 닮은 노을 하나 혼신을 기울여 통증의 언어를 잠재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3.06.14
냉이꽃 / 이근배 그림 주인공 / 페르디 난트 2세 대공 냉이꽃 / 이근배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거야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시집 /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애송 명시 문학이야기/명시 2023.02.20
벽속의 어둠 / 이 효 그림 / 이경수 벽속의 어둠 / 이 효 흔들리는 나뭇잎이라도 잡고 싶습니다 나뭇잎도 작은 입김에 흔들리는데 아! 하나님 당신의 숨 한 번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하얀 침대 위 어머니 얼음이 되어간다. 태어나서 스스로 가장 무능하게 느껴진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초라함에 울음도 표정을 잃어버린다. 눈물마저 원망스러운데 창문 넘어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가지 끝 미세한 흔들림이 눈동자를 찌른다. 아니 그 떨림을 잡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가 눈발로 날린다. 당신의 숨 한 번 불어주시길~~ 오! 나의 어머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3.01.05
항아리 / 이 효 그림 / 김정수 항아리 / 이 효 손길 닿지 않는 대들보에 항아리를 거신 아버지 까막눈 파지 줍는 아저씨 은행에 돈 맡길 줄 몰라 아버지께 당신을 건넨다 아버지 세상 떠나기 전 항아리 속에 꼬깃꼬깃한 돈 아저씨에게 쥐어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 긴 겨울이 꼬리 잘리고 다시 찾아온 가을 검정 비닐 들고 온 아저씨 홀로 계신 어머니께 두 손 내민다 비닐 속에는 붉게 터져버린 감이 벌겋게 들어앉아 울고 있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2.12.16
그, 날 / 이 효 그림 / 김 연경 그, 날 / 이 효 흰 눈이 쌓인 산골짝 한 사내의 울음소리가 계곡을 떠나 먼바다로 가는 물소리 같다 하늘 향해 날개를 폈던 푸른 나뭇잎들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 이유도 모른 채 목이 잘린 직장 어린 자식들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어 하얀 눈발에 내려갈 길이 까마득하다 어머니 같은 계곡물이 어여 내려가거라 하얀 눈 위에 길을 내어주신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2.12.13
소녀상 少女像 / 송영택 그림 / 자심 소녀상 少女像 / 송영택 이 밤은 나뭇잎이 지는 밤이다 생각할수록 다가오는 소리는 네가 오는 소리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소리다 지금은 울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가만히 어머니를 생각할 때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듯 내가 별을 마주 서면 잎이 진다 나뭇잎이 진다 멀리에서 또 가까이서... 시집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8.27
유발과 유봉 / 임승훈 그림 / 신혜수 유발과 유봉 / 임승훈 너와 나는 여명과 낙조 해와 달 같은 사이 평생을 달그락거리며 내는 소리 산사의 풍경 소리 고통과 애증을 다듬어주는 신의 숨소리 유발은 아버지의 발 유봉은 어머니의 손 히포크라테스의 손과 발 원을 그리며 돌고도는 약사여래불 모든 이의 앰뷸런스 임승훈 시집 / 꼭, 지켜야 할 일 문학이야기/명시 2022.06.03
꽃을 보려면 / 정 호 승 그림 / 문지은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정호승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4.07
밥해주러 간다 / 유안진 작품 / 서 윤 제 밥해주러 간다 / 유안진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 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 유안진 시인 약력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명예교수) *1965년 등단 *1970년 첫 시집 *1975년 *1998년 10회 정지용 문학상 *1990년 *2000년 *2013년 6회 목월문학상 수상 *2012년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 문학이야기/명시 20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