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어머니 24

코뿔소 / 나 호 열

그림 / 박 삼 덕 ​ ​ ​ ​ 코뿔소 / 나 호 열 ​ ​ 둥글둥글 살아가려면 적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다가도 생존은 싸늘한 경쟁이라고 엄포도 놓으시던 어머님의 옳고도 지당하신 말씀 고루고루 새기다가 어느새 길 잃어 어른이 되었다 좌충우돌 그놈의 뿔 때문에 피헤서 가도 눈물이 나고 피하지 못하여 피 터지는 삿대질은 허공에 스러진다 이 가슴에 얹힌 묵직한 것 성냥불을 그어대도 불붙지 않는 나의 피 채찍을 휘둘러도 꿈적을 않는 고집불통 코뿔소다 힘 자랑하는 코뿔소들 쏟아지는 상처를 감싸쥐고 늪지대인 서울에 서식한다 코뿔소들이 몰래 버리는 이 냄새나는 누가 코뿔소의 눈물을 보았느냐 ​ ​ ​ ​

의자 / 이정록

그림 / 김 연 제 ​ ​ ​ ​​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 * 이정록 시집 / 의자 ​ ​ ​ ​ ​ ​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그림 / 김 희 정 ​ ​ ​ ​ 고요한 귀향 / 조 병 화 ​ ​ ​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 지나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병화시집 / 고요한 귀향 ​ ​ ​ ​ 그림 / 김 희 정

바닷가에 대하여 / 정 호 승

그림 / 이 효 경 ​ ​ ​ 바닷가에 대하여 / 정 호 승 ​ ​ ​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

겨울달 / 문 태 준

그림 / 전 지 숙 ​ ​ ​ 겨울달 / 문 태 준 ​ ​ 꽝꽝 얼어붙은 세계가 하나의 돌멩이 속으로 들어가는 저녁 ​ 아버지가 무 구덩이에 팔뚝을 집어넣고 밑동이 둥굴고 크고 흰 무 하나를 들고 나오시네 ​ 찬 하늘에는 한동이의 빛이 떠 있네 ​ 시래기 같은 어머니가 집에 이고 온 저 빛 ​ 문태준 시집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 ​ ​ ​

칼과 집 / 나 호 열

그림 / Bea mea soon ​ ​ 칼과 집 / 나 호 열 ​ ​ 어머니는 가슴을 앓으셨다 말씀 대신 가슴에서 못을 뽑아 방랑을 꿈꾸는 나의 옷자락에 다칠세라 여리게 여리게 박아 주셨다 (멀리는 가지 말아라) 말뚝이 되어 늘 그 자리에서 오오래 서 있던 어머니, 나는 이제 바람이 되었다 함부로 촛불도 꺼뜨리고 쉽게 마음을 조각내는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칼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서 길 잃은 바람이 되었다 어머니, ​ ​ ​ 시집 / 칼과 집 ​ ​

무제 2 / 이 남 우

그림 : 천 지 수 ​ ​ 무제 2 / 이 남 우 ​ ​ 어머니 소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윤사월 봄은 왜 그리 깁니까 보리는 파랗게 패어 눈을 유혹하지만 오월이 오기 전에는 벨 수 없는 노릇 어린 자식 밥그릇은 커만 가는데 어머니는 보리밭 머리에서 송홧가루만 이고 있습니다 ​ 어머니 소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봄 햇살에 더욱 깊어 가는 주름은 차라리 기쁜 역사라하고 일 많은 오월에 보리타작 있어 서럽도록 기쁘지요 어린 자슥 밥그릇 채어줄 생각에 송화는 더 이상 꽃이 아닙니다 ​ 오늘, 소나무 끝마디마다 새순이 돋고 있습니다 어머니 ​ ​ 이남우 시집 : 나 무 ​ *이남우 시인은 2000년 십여 년 강화문학창립회원 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치악산 원주에서 시문학 '시연' 동인으로 활동한다. 국립방송통신대..

해마다 봄이 되면 / 조 병 화

그림 : 신 경 애 ​ ​ 해마다 봄이 되면 / 조 병 화 ​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 조병화 시집 : 어머니 ​ *시인은 어린 벗과 봄을 대비시..

내 기분 / 강 달 막

그림 : 이 효 ​ ​ 내 기분 / 강 달 막 ​ 이웃집 할망구가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줄 알고 버스도 안물어 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 ..................................................................... ​ 3억 7천 / 김 길 순 ​ "너는 글 잘 모르니까 내가 알아서 할께" 고마운 친구와 화장품 가게를 시작 했다 명의도 내 이름 카드도 내 이름으로 해준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다. ​ 어느 날 친구는 은행 대출을 해서 도망갔고 나는 3억 7천 만원의 날벼락을 맞았다 아들 방까지 빼서 빚을 갚으며 "글만 알았어도....글만 알았어도......" 가슴을 쳤다. ​ 나는 기를 쓰고 공부를 시작 했다..

어여 내려가거라 (자작 시)

그림 : 김 정 수 어여 내려가거라 / 이 효 흰 눈이 쌓인 산골짝 한 사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향해 달리던 푸른 나뭇잎들 떨어지기는 한순간 이유도 모른 채 해고된 직장 포장마차 앞에서 토해낸 설음이 저 계곡물만 하랴 이 물을 모두 마시면 서러움이 씻겨나가려나 어린 자식들 앞 차마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올라온 겨울 산 하얀 눈발에 내려갈 길이 아득히 멀다 계곡 같은 어머니 늘어진 젖가슴으로 아들을 안아주신다 어여 내려가거라 따뜻한 어머니 맨손 하얀 눈 위에 손자국 내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