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어머니 24

따뜻한 봄날 / 김 형 영

​ 따뜻한 봄날 / 김 형 영 ​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고 가네. ​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을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 * 따뜻한 봄날을 장사익 노래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 시는 화사한 봄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천천히 읽어보면 고려장을 소재로 한 시다. 요즘은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놓..

카테고리 없음 2020.12.10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 나호열

​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 나호열 구백 걸음 걸어 멈추는 곳 은행나무 줄지어 푸른 잎 틔어내고 한여름 폭포처럼 매미 울음 쏟아내고 가을 깊어가자 냄새나는 눈물방울들과 쓸어도 쓸어도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편지를 가슴에서 뜯어내더니 한 차례 눈 내리고 고요해진 뼈를 드러낸 은행나무 길 구백 걸음 오가는 사람 띄엄띄엄 밤길을 걸어 오늘은 찹쌀떡 두 개 주머니에 넣고 저 혼자 껌벅거리는 신호등 앞에 선다 배워도 모자라는 공부 때문에 지은 죄가 많아 때로는 무량하게 기대고 싶어 구백 걸음 걸어 가닿는 곳 떡 하나는 내가 먹고 너 배고프지 하며 먹다 만 떡 내밀 때 그예 목이 메어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마는 나에게는 학교이며 고해소이며 절간인 나의 어머니 ​ 시집 :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