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푸른언덕 7

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백야 / 원수현백야 / 원수현창을 하나 갖고 싶다고 말했다아주 작아서 내 눈에만 보이는 창을사람들은 으레 그랬듯 그저 스쳐 지나갈 것이고나는 그 작은 곳에 눈을 대고 밖을 보기로 했어틈 사이로가진 것들이 보였다 너무도 많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고많아서 우는 사람들없어서 우는 사람들우리 모두는 이렇게 불행함을 하나씩 눈에 넣었지이곳을 떠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사람들그들은 지금 어디에?빙하를 뚫고 도달한 곳이 빙하라니요!그곳도 돌았다 빙글빙글 꼭짓점도 결국에는그대는 미치어 있는가그대는 미쳐 있던가아 다르고 어 달라서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뱀을 피해 장대에 올라간다고 했다점점 더 길어지는 그림자들우리의 그림자가 세상을 덮을 때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깨진 창문을 다시 기우는 ..

꽃, 초인종을 누른다 / 이효

그림 / 김동신 꽃, 초인종을 누른다 / 이효 세상의 모든 꽃들 아름답다고 꽃병에 전부 꽂아둘 수는 없는 것 화병에 물을 주는 남자 말라가는 꽃에 초인종을 단다 야위어 가던 밤도 고독한 인연도 서로에게 비상벨이 된다 심장이 술렁거린다 내가 너의 등이 되어 주리라 그대를 가슴에 안고 절망의 시작, 고요의 끝을 본다 봄의 숲, 산짐승의 긴 울음 홀로 소리를 잘라내야 하는 순간 꽃에 초인종을 누른다 벗어 놓은 신발 속, 비번 풀린 꽃잎 가득하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장미는 고양이다 / 이효

​​장미는 고양이다 / 이효 ​  그 사실을 장미는 알고 있을까 앙칼스러운 눈빛, 날 선 발톱, 애끓는 울음소리고혹적으로 오월의 태양을 찢는다 지붕 위로 빠르게 올라가 꼬리를 세운 계절고양이 모습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왕관을 벗어 던진 고고함이다 때로는 영혼의 단추를 풀어도찌를 듯한 발톱이 튀어나온다 왜 내게는 그런 날카로운 눈빛과 꼿꼿함이 없을까  내 심장은 언제나 멀건 물에 풀어놓은 듯미각을 잃는 혓바닥 같다 고양이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눈빛은 장미의 심장과 날카로운 가시의 고고함이다 고양이는 붉은 발톱으로 오월의 바람을 川 자로 할퀴고 간다 장미의 얼굴에는 오월의 핏빛이 칼날 위에 선다 나는 오월의 발톱을 기르고 있다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https://youtu.be/3OSjHE..

더벅머리 여름 / 이 효

​​ 더벅머리 여름 / 이 효  물속에서 소리와 빛깔을 터트린다도시인들 자존심도 태양 아래서 가식의 옷을 벗는다  영혼이 푸른 더벅머리 나무 위로 하얀 물고기들 흘러간다도시의 자존심을 물에 헹군다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더벅머리 아이들 여름이 가위로 잘려나가기 전 다시 한번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슬픈 도시를 영롱한 눈빛으로 채운다  ​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장미꽃을 켜는 여자 / 이 효

장미꽃을 켜는 여자  / 이 효소나무 숲에서 끊어진 기억사무침이 깊어 고딕체가 된 꽃여자의 징검다리는 벽 속에갇혀 과거를 더듬는다지나온 눈 맞춤은 어제의 과녁을 뚫는다심장은 사랑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내 가슴에 블랙홀을 만들고 떠난 그돌이킬 수 없는 우울의 침잠마지막이란 입술을 읽다가 잠에서 깬다슬픔을 기억하는 심장은 말을 아낀다장미꽃을 다시 켜는 여자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문학 이야기 2024.09.27

​달팽이관 속의 두 번째 입맞춤 / 이효

작품 / 한치우​ ​ ​ ​ ​ ​​ ​ 달팽이관 속의 두 번째 입맞춤 / 이효 ​ ​ ​ 입맞춤을 연습해 본 적이 없어 광신도가 춤을 추던 그날 밤 생명이 자궁에 바늘처럼 꽂혔지 아빠라는 단어를 사막에 버린 남자 무표정한 가을이 오고, 혈액형을 쪼아대는 새들 끊어진 전선으로 반복된 하루 딱 한 번의 입맞춤 눈빛이 큰 불을 지핀 거야 모든 삶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 매일 밤, 암막 커튼을 치고 바다로 가는 꿈을 꿔 나쁜 생각들이 골수를 빼먹어 아비도 없는 애를 왜 낳으려고 하니? 이름도 모르는 신에게 아가 울음을 택배로 보낼 수 없잖아 나는 썩지 않는 그림자니까 어느 날, 종소리가 달팽이관을 뚫고 아기 숨소리 깃털이 된다 생명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거래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세상에 두 번째 입맞춤을 알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