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5/03 3

202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그림 / 김정현 2025년 농민신문 신춘 당선 시 모란 경전 / 양점순 나비는 비문을 새기듯 천천히 자수 병풍에 든다 아주 먼 길이었다고 물그릇 물처럼 잔잔하다 햇빛 아지랑이 속에서 처음처럼 날아오른 나비 한 마리 침착하고 조용하게 모란꽃 속으로 모란꽃 따라 자라던 세상 사랑채 여인 도화의 웃음소리 대청마루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 모란 그늘 흩어지는 뒤뜰 흐드러지게 피는 웃음소리 그녀가 갈아놓은 먹물과 웃음을 찍어 난을 치고 나비를 그려 넣는 할아버지 ..

염천(炎天) / 마경덕

​염천(炎天) /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이놈아 그만 울어!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독하긴 매한가지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열무같이..

2025, 미네르바 신인상 / 이효

부처가된 노가리 / 이 효 장엄한 일출을 숯불에 굽는다벌겋게 익어버린 노을 질긴 바다를 굽고 또 굽는다쪼그라든 몸통, 가시는 슬픔의 무게를 던다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짭짤한 맛, 고단한 날들의 바람바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식탁에 놓인 고뇌의 모서리 씹힐 때마다 걸리는 가시거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휘우듬한 등은 일어서지 못한다 실핏줄도 막혀버린 어제와 오늘수심 깊은 시퍼름이 울컥 올라온다 바다를 잃어버린다는 것은출렁이는 꼬리가 잘린 것 부드럽게 짓이긴 속살누군가의 입에서 상냥한 저녁이 된다  허공을 움켜잡은 바다의 조각들수상한 부처가 되어간다   단팥죽의 비밀 / 이 효  끈적한 남자의 눈은 겨울이다동동 떠 있는 하얀 눈동자 초점 잃은 아버지다 불안한 내 손은 탁자 아래서 울컹거리는 안부를 갉아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