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두부의 연가 / 이효

푸른 언덕 2024. 12. 5. 10:14

두부의 연가 / 이효

 

 

검정 비닐 속 뭉개진 두부는

 

버리지 마, 기울어지는 식탁 모서리

냉장고 속에서 냉기를 먹는 하루

 

황금 들판을 기억하며

멍석 위에서 슬픔을 말리는 여자

 

누군가 힘껏 내리친 도리깨

꿈은 먼 하늘로 튕겨나간다

 

탁탁 탁탁탁 탁탁 탁탁

모진 시간이 여자의 껍질을 벗긴다

 

차가운 물속에서 불은 낮과 밤

젖은 몸 일으켜 세운다

 

세상 오래 살다 보면 두부도 뭉개지잖아

여자의 무너진 몸이 우렁우렁 운다

 

서로의 얼굴에 생채기를 낸 저녁

열 개의 손가락으로 만두를 다시 빚는다

 

무너진 사랑은 저버리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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