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의 연가 / 이효
검정 비닐 속 뭉개진 두부는
버리지 마, 기울어지는 식탁 모서리
냉장고 속에서 냉기를 먹는 하루
황금 들판을 기억하며
멍석 위에서 슬픔을 말리는 여자
누군가 힘껏 내리친 도리깨
꿈은 먼 하늘로 튕겨나간다
탁탁 탁탁탁 탁탁 탁탁
모진 시간이 여자의 껍질을 벗긴다
차가운 물속에서 불은 낮과 밤
젖은 몸 일으켜 세운다
세상 오래 살다 보면 두부도 뭉개지잖아
여자의 무너진 몸이 우렁우렁 운다
서로의 얼굴에 생채기를 낸 저녁
열 개의 손가락으로 만두를 다시 빚는다
무너진 사랑은 저버리는 게 아니야
이효 시집 / 장미는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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