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희망 11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 하

그림 / 김 정 수 ​ ​ ​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 하 ​ ​ ​ 아름다운 시를 보면 그걸 닮은 삶 하나 낳고 싶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노을빛 열매를 낳은 능금나무처럼 ​ 한 여자의 미소가 나를 스쳤을 때 난 그녀를 닮은 사랑을 낳고 싶었다 점화된 성냥불빛 같았던 시절들, 뒤돌아보면 그 사랑을 손으로 빚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많은 열정의 몸짓들을 낳았던 걸까 그녀를 기다리던 교정의 꽃들과 꽃의 떨림과 떨림의 기차와 그 기차의 희망, 내가 앉았던 벤치의 햇살과 그 햇살의 짧은 키스 밤이면 그리움으로 날아가던 내 혀 속의 푸른 새 그리고 죽음조차도 놀랍지 않았던 나날들 ​ 그 사랑을 빚고 싶은 욕망이 나를 떠나자, 내 눈 속에 살던 그 모든 풍경들도 사라졌다 바람이 노을의 시간을 거두어 가면 능금나무..

​천 년의 문 / 이 어 령

작품 / 송 은 주 ​ ​ ​ ​ 천 년의 문 / 이 어 령 ​ ​ ​ 절망한 사람에게는 늘 닫혀있고 희망 있는 사람에게는 늘 열려 있습니다. 미움 앞에는 늘 빗장이 걸려 있고 사랑 앞에는 늘 돌쩌귀가 있습니다. ​ 천년의 문이 있습니다. 지금 이 문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는 까닭은 희망과 사랑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 새 천 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입니다. 새 천 년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입니다. ​ 빗장 없는 천 년의 문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는 것은 미움의 세월이 뒷담으로 가고 아침 햇살이 초인종 소리처럼 문 앞에 와 있는 까닭입니다. ​ ​ ​ ​ 이어령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 ​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그림 / 이고르 베르디쉐프 (러시아) ​ ​ ​ ​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 ​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 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 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을 것이냐 ​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 가는 달비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길 위에서 중얼 거리다 / 기 형 도

그림 / 조 지 원 ​ ​ ​ 길 위에서 중얼 거리다 / 기 형 도 ​ ​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들이여 ​ ​ ​ 기형도 시집 / 입 속의..

미얀마의 봄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미얀마의 봄 / 이 효 ​ 목련이 피기도 전에 떨어진다 수북이 떨어진 꽃잎 밟지 마라 누군가 말한다 꽃잎이 떨어진다고 뭐가 달라지나 ​ 붉은 핏방울 땅을 흥건히 적신다 자유를 향한 목소리 총알을 뚫는다 치켜올린 세 개의 손가락 끝에 파란 싹이 솟아오른다 ​ 밤새도록 울부짖던 어머니의 기도 붉은 등불로 뜨겁게 타오른다 오늘 밤에도 미얀마의 봄을 위해 타오르다 떨어지는 젊은 영혼들 ​ 잔인한 4월의 봄은 붉은 목련에 총알을 박는다 그래도 봄은 다시 온다. ​ ​ ​ 미얀마의 소식이 뉴스를 통해서 전해진다. 젊은 청년들을 비롯해서 어린아이들까지 목숨을 잃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매일 벌이고 있지만 군경은 선량한 국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무력으로 민가에 ..

러시아 미술 이야기

예고로프,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러이아에서 현존하는 최고 그래픽 화가 *최고 파스텔 화가 ​ 그림 작품 속 풍경은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함 속에 보편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일상에서 보는 러시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색채에 녹여낸다. 낭만적이고, 부드럽고, 그리고 달콤한 느낌을 준다. 자연을 사랑하고 오래 관찰한 작가만의 철학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독특하고 잊을 수 없는 분위기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 2021년 신축년(辛丑年) 희망의 길이 되게 하소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서로 돕고 사랑하게 하소서. 2021년 신축년(辛丑年)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게 하소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게 하소서. 2021년 신축년(辛丑年) 희망의 강을 건너게 하소서. 20..

눈보라 / 황 지 우

장 용 길 ​ ​ 눈보라 / 황 지 우 ​ ​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 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아주 추운데를 나에게 남기고 ​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

바이킹 (2020 신춘문예)

바이킹 /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촛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

돌짝밭 (자작 시)

돌짝밭 / 이 효 돌짝밭이 울었다 씨앗을 품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머리를 짓누르는 돌이 무겁다. 흑수저는 울었다 꿈을 품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삶을 짖누르는 돈이 무겁다. 내게 물을 주는 자 누구인가? 사람들이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자 모두가 끝을 말할 때 시작을 말하는 자 입안 한가득 붉은 고추장을 찍은 쌈이 파랗게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