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바람의 사원 / 박 순

푸른 언덕 2025. 2. 7. 10:49

바람의 사원 / 박 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구부러진 길을 갈 때 몸은 휘어졌고

발자국이 짓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꽃과 풀과 새의 피가 흘렀다

바람이 옆구리를 휘젓고 가면

돌멩이 속 갈라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바람의 늑골 속에서 뒹구는 날이 많았다

바람이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고 채찍질을 하면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

질주본능으로 스스로 박차를 가했던 시간들

옆구리의 통증은 잊은 지 오래

일어나지 못하고 버려졌던

검은 몸뚱이를 감싼 싸늘한 달빛

그날 이후

내 몸을 바람의 사원이라 불렀다

 

 

시집 / 바람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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