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170

감나무와 어머니

감나무와 어머니 이 효 당신과 함께 심었습니다 손가락만 한 감나무 돌짝밭 손끝이 닳도록 함께 땅을 파내려 갔습니다 주님은 햇살을 끌어다 주시고 가족은 새벽을 밀었습니다 오늘, 그 감을 따야 하는데 당신은 가을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식탁 위 접시에 올려진 감 하나 차마 입으로 깨물지 못합니다 한평생 자식들에게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을 온몸으로 땅에 쓰고 가르치신 어머니 그렁한 내 눈은 붉은 감빛이 되었습니다 *오랜동안 블로그를 비웠습니다. 늦은 가을에 어머님을 보내고 다시 마음을 추슬러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2023년 마지막 겨울입니다. 블친님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달팽이관 속의 두 번째 입맞춤 / 이효

작품 / 한치우​ ​ ​ ​ ​ ​​ ​ 달팽이관 속의 두 번째 입맞춤 / 이효 ​ ​ ​ 입맞춤을 연습해 본 적이 없어 광신도가 춤을 추던 그날 밤 생명이 자궁에 바늘처럼 꽂혔지 아빠라는 단어를 사막에 버린 남자 무표정한 가을이 오고, 혈액형을 쪼아대는 새들 끊어진 전선으로 반복된 하루 딱 한 번의 입맞춤 눈빛이 큰 불을 지핀 거야 모든 삶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 매일 밤, 암막 커튼을 치고 바다로 가는 꿈을 꿔 나쁜 생각들이 골수를 빼먹어 아비도 없는 애를 왜 낳으려고 하니? 이름도 모르는 신에게 아가 울음을 택배로 보낼 수 없잖아 나는 썩지 않는 그림자니까 어느 날, 종소리가 달팽이관을 뚫고 아기 숨소리 깃털이 된다 생명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거래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세상에 두 번째 입맞춤을 알릴 ..

고향에 핀 도라지꽃 / 이 효

​ ​ 고향에 핀 도라지꽃 / 이 효​ ​ 밥상에 오른 도라지나물 고향 생각난다 할머니 장독대 도라지꽃 어린 손녀 잔기침 소리 배를 품은 도라지 속살 달빛으로 달여 주셨지 세월이 흘러 삐걱거리는 구두를 신은 하루 생각나는 고향의 보랏빛 꿈 풍선처럼 부푼 봉오리 두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면 펑하고 터졌지 멀리서 들리는 할머니 목소리 애야, 꽃봉오리 누르지 마라 누군가 아프다 아침 밥상에 도라지나물 고향 생각하면 쌉쏘름하다

수직의 무게 / 이 효

진도 수직의 무게 / 이 효 도시의 실핏줄 터트리고 달려온 남해 품을 내어준다 모래사장에 벗어 놓은 신발은 하루 끈을 느슨하게 푼다 한평생 리모컨이 되어 가족이 누른 수직의 무게로 인생의 물음표와 마침표를 견뎌야 했던 남자 치매 걸린 노모의 수다는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껍질 벗겨진 전선줄 천둥소리에 뼈대 하나 남긴다 코드가 헐거워진 저녁 남자 닮은 노을 하나 혼신을 기울여 통증의 언어를 잠재운다

청산도의 봄 / 이 효

그림 / 이 효 ​ ​ ​ ​ 청산도의 봄 / 이 효 ​ 굽은 허리 밭두렁 흙 묻은 치맛자락 푸른 남해에 담가 하늘에 펼쳐 더니 유채꽃 한가득 나비가 난다 청보리 휘날리고 무너진 돌담길 아래로 노란 안부가 물든다 할미 텃밭 사라진 자리 꽃밭이 자꾸 늘어난다 양산 쓴 서울 양반들 할미 돌무덤에 올라가 찰칵 청산도 노란 물결에 흔들린다 멀리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 밭을 갈 사람 어디 없소 점점 멀어지는 할미 목소리 청산도의 봄은 노랗게 미쳐간다 ​ 출처 / 한국 시학 2023 봄 (65호) ​ ​ ​ ​

내레이션 / 이 효

그림 / 유진 ​ ​ ​ ​ 내레이션 / 이 효 ​ 천년을 앞산과 눈 맞춤하더니 여자는 꽃으로 타들어 간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누군가 일 년도 기다리지 못한 사랑 수없이 벙긋거린 입들 밤마다 별을 보고 달을 보았을 가슴속에 꾹꾹 누른 천년 붉게 달덩이 피어오른 불암산 서로의 가시를 눈 안에 앉히는 가시가 녹아 꽃봉오리 펼치는 서로의 강에 비춰보는 온몸으로 전하는 4월의 환희 이효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