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170

꽃구경 가자 (자작 시)

꽃구경 가자 / 이 효 ​ 얘야 꽃이 피었구나 꽃구경 가자 ​ ​ 모두가 잠든 밤 당신 검게 그을린 폐 붉은 꽃 한 조각 펼쳐 놓고 가슴에 바느질하는 소리 딸에게 전화를 건다 ​ ​ 아버지 왜요? 새벽이잖아요 동트면 일나가야 해요 찰칵~ ​ ​ 얘야 꽃구경은 다리 힘없다 목소리가 듣고 싶구나 뚜뚜뚜~ ​ 당신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꽃이 피면 미안했습니다 붉은 꽃이 피면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 ​ 멀리서 웃어 주시는 아버지 옷자락이 너무 얇아서 꽃무늬 가득한 가을 산자락 끌고 왔습니다.

무지개 (자작 시)

무지개 / 이 효 무지개를 본지 얼마만인가? 얼릴 적 비 그치면 등 뒤에 무지개 업고 놀았지 동무들 다 어디로 갔나? 무지개도 보이지 않네 쓸쓸한 마음에 흰머리만 솟네 비 그친 어느 날 꿈으로 다시 온 무지개 나뭇잎처럼 마음 흔들렸지 어릴 적 무지개 보고 소원 빌었지 착한 어른 되게 해달라고~ 나이 먹어 무지개 보고 소원을 빌었지 욕심 내려놓게 해달라고~ 비 그친 여름 날 하늘을 올려다보니 붉은 풍선만 한 내 욕심이 일곱 색깔 무지개로 떴네.

조연 꼬리표

조연 꼬리표 / 이 효 ​ 파란 하늘이 내려온다 구름이 땅 같고 땅이 구름 같구나 무대 위 서서히 춤추는 무희 속은 울고 있다 외다리 무희 아픔 골 깊다 ​ 무대 앞 우뚝 솟은 산 누런 잎에 녹아내린 세월 전쟁터에서 승리한 적장은 꽃다발 던진다 피 묻은 겉옷 흰옷 갈아입는다 ​ 내 안에 포로는 속삭인다 새벽이 오기 전에 떠나자 양철 같은 둥근 모자 쓰고 깃털을 단다 적지를 탈출하는 풀 피리 소리 무음으로 떤다 ​ 파란 하늘에서 양발로 자유롭게 춤추는 그날까지 조연 꼬리표 하늘에 펄럭인다 춤추는 무희의 눈물 한 방울 가을 산 활활 태운다. ​ ​ ​

아픈 별로 긋다 (자작 시)

아픈 별로 긋다 / 이 효 들판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내 마음에만 바람이 분다 하얀 구름은 흔들리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하늘에 큰 창문 열리고 연보라 꽃이 뭉실 거린다 구름이 눈짓한다 하늘에 연서를 쓰란다 전깃줄은 시도 아니라고 마음을 묶는다 새들은 날며 노래한다 내일이 항상 올 것 같지만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파란 하늘을 연연한 눈망울로 애틋하게 바라보란다 풋 시인은 하늘을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이다 첫 문장이 절망 속에 빠질지라도 출발선을 아픈 별로 긋는다.

고구마 순 (자작 시)

고구마 순 / 이 효 고구마 순 나물이 먹고싶다 가을을 땅에 묻고 올라온 손 구수한 그 맛이 그립다 보랏빛 껍질을 홀딱 벗긴다 순수한 영혼 되란다 뜨거운 물에 말랑 삶는다 유연한 사람이 되란다 은근히 당기는 참기름 프라이팬에 야들야들 볶는다 남들과 잘 어울리란다 가을 달밤이 타들어가는 소리 아련한 유년의 추억 부뚜막을 넘는다 하얀 쌀밥에 고구마 순 나물 이 빠진 둥근 밥상 할머니와 겸상을 한다 밥 굶고 다니지 말란다 할머니 마른 목덜미 닮은 긴 고구마 줄기 길이 아니면 돌아서 가란다.

들국화가 되련다 (자작 시)

들국화가 되련다 / 이 효 새벽 산에 오르니 산등선에 칼바람 맞고 우뚝선 들국화야 벗들은 담장 아래서 물드는데 너는 무엇이 그리워 동물 울음 소리 삼키며 먼 산 지키고 있니? 밤하늘 수천개의 별들과 나누는 사랑이 잣나무 사이로 빗겨온 세월을 삼키면서까지 지킬만 하더냐? 능선위에 들국화야 오늘밤 떨지 말아라 푸른 하늘에 배띄워 깃털같은 구름 이불 덮고 가을 산에 함께 누워보자꾸나 들국화는 별이되고,나는 들국화가 되련다.

우측통행

​ 우측통행 / 이 효 ​ 아침 산책길 노란 선이 그어졌다 우측통행 글자가 소복을 입고 누었다 ​ 차도 다니지 않는 길 서로 손잡고 걷던 길 넘어오지 말란다 건너편 무궁화 꽃도 볼 수 없다 ​ 마음에도 선이 그어졌다 전국은 선 긋기 열풍 내일은 또 무슨 선이 그어질까? ​ 정의는 반듯한 것이라 배웠다 선이 밤마다 꿈틀거린다 날이 밝으니 선 가르기가 편가르기가 되었다 ​ 나는 우측통행 너는 좌측통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