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자작 시) 벼락 / 이 효 저 못된 코로나 때문 방구석에 처박혀 있네 머릿속에는 어깨에 배낭을 메고 KTX를 잡아타네 부산 해운대로 가라고 꼬드기네 마음이 축축한데 하늘에선 폭우가 쏟아지네 우르릉 꽝! 번개까지 울어대네 어릴 적 할머니 말씀이 못된 짓 하면 번개 맞는다고 했네 지구가 번개를 맞는구나 흐르는 강물 땜에 가두고 쓰레기 산 만들어 놓고 코로나 키우더니 기어코 문제아가 되었구나 오늘밤 벼락은 피해 가려나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8.22
화악산 아래서 (자작 시) 화악산 아래서 / 이 효 터널을 빠져나오면 아담한 정자 하나 정자 옆 작은 연못 송사리 떼 지어 피었다. 여름은 산자락 움켜잡고 파란 하늘로 달아난다 계곡의 찬바람은 등을 타고 허기를 채운다. 불량한 세상 언제쯤 코로나 터널 빠져나오려나? 문짝 없는 정자 옆 꽃노래 듣고 싶어라 송사리 떼 잡으러 가는 바람 부서진 사람들 마음 엉거주춤 끌어올린다 해 질 녘 구름을 더듬듯 마음을 꽃그늘 아래 잠재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8.19
장마 (자작 시) 장마 / 이 효 한 여름 내내 얼마나 참았던 울음인가? 왈칵 왈칵 쏟아붓는다 나뭇잎들이 머리를 감고 개천에는 생각의 잔해가 둥둥 떠내려간다 한 여름 마지막 끈이 풀렸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들 더는 견디기 어렵다고 지구는 돌아가면서 운다 눈물 덩어리가 하얀 수국만 하다 수국 꽃이 장마를 업고 여름 길을 내려간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8.03
살아남은 자 (자작 시) 살아남은 자 / 이 효 저 푸른 숲 속에서 보호색 하나 갖지 못하고 나 여기 있소 하는 등불 하나 저 높은 빌딩 숲에서 안전복 하나 입지 못하고 나 여기 있소 달리는 오토바이 하나 푸른 둑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가슴 졸이며 눈물만 글썽 가녀린 목에 등불 하나 밥그릇이 무겁게 일어난다 간신히 마주친 눈 "살았구나" "고맙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7.29
씨앗 (자작 시) 씨앗 / 이 효 돌짝밭에 싸앗 하나를 심고 묵언의 세월을 보냈다 여름 장마에 가슴 졸였다 사랑이 떠내려 갈까 봐 매일 아침 눈 맞춤에 눈까지 짖물렀다 어떤 꽃이 필까? 해바라기 닮은 노란 난쟁이 꽃이 피었다. 바라볼 때마다 속 울음이 들린다. 사랑이 잔인하다는 걸 처음 느낀 순간이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