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간다는 것 (자작 시) 익어간다는 것 / 이 효 연둣빛 치마저고리 입고 노란 꽃잎 머리에 달고 종이 가마 타고 시집온 너 한 여자가 익어 간다는 것은 눈금 잃은 저울 노랗게 물든다는 것은 긴 시간 속을 홀로 걷는 일 익어 간다는 것은 고단한 살림 견디어 내는 일 익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녹여 다른 사람들과 하..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30
담쟁이 넝쿨 담쟁이넝쿨 / 이 효 디디고 올라가면 먼저 오른 넝쿨들 발로 밀지 말아라 자동차 그 담벼락 밑 아찔하게 달리고 청춘 한 잎 떨어진다 푸르른 청춘들이여 피 흘림 절망 딛고 한 잎씩 천천히 올라라 틈을 내어 주며 함께 벽을 넘어라 튀어 오른 아침 벌과 나비 친구되어 깊은 상처 서로 향기 ..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26
공간(자작 시) 공간 / 이 효 테이블 위에 라테 한 잔 겉옷을 걸쳐 놓은 의자 서로의 안부를 묻는 눈빛들 생각을 지지해 주는 순간들 그때는 몰랐다 구석진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 흔들리는 시계 추에 매달린 불안한 시간들인 줄만 사람들 입에 채워진 흰 수갑 작은 조각보 같은 시간들 행복을 꿰매는 바늘..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23
정지된 화면 정지된 화면 / 이 효 아파트 앞 양지바른 곳 두 마리 고양이가 햇살을 받고 있다. 어린 새끼 고양이 어미 등에 매달려 세상을 바라본다. 호기심 많은 낯선 여자 카메라 들고 가까이 다가간다. 새끼 고양이 등에 털이 선다. 헤치지 않을게 ~ 여자의 눈빛 봄 햇살 보낸다. 날카로운 어미의 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22
양귀비도 울고 간다 양귀비도 울고 간다 / 이 효 세상에 양귀비 보다 더 아름다운 게 있다니 놀라워라 바로 너였구나 피는 꽃 막을 수 없고 지는 꽃 잡을 수 없다지만 복숭앗빛 고운 얼굴에 백설까지 더하다니 너의 자태에 넋 나간다. 천하에 양귀비도 울고 간다 너에 아름다움 누가 만들었나 누가 따..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20
어머니와 묵 어머니와 묵 / 이 효 간병인 없는 날 찾아간 어머니 집 나만 보면 묵 쑤신다 꼬부라진 허리 간신히 싱크대 매달려 바로 서지도 못하신다 뜨거운 주걱 빼앗어 돌린다 불 줄여라 열 받지 말고 살라는 말씀 천천히 저어라 욕심부리지 말라는 말씀 오래 저어라 끈기 있게 살라는 말씀 ..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19
하루만 더 하루만 더 / 이 효 자색 빛 곱디 고아 아침마다 내 발걸음 시간에 걸려 넘어진다 오월이 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누레진 너 자목련 꽃잎 떨어질 때 내 심장도 시든다 이른 아침 떠나는 너 향기라도 내 몸에 박아두려고 아파트 현관 문을 나선다 하늘로 곧게 선 빗자루 경비 아저씨 모질게 ..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16
길 길 / 이 효 길 시작도 사람이고 길 끝도 사람이다 때로는 머리로 끌고가는 길이 꼬리에 닿을 때도 있다 상처 받지 말아라 때로는 내가 길을 가는게 아니라 길이 나를 끌고 갈 때도 있다 아파하지 말아라 벼랑 끝에 메달려 있을 때도 터널 없는 산을 만날 때도 두렵다 말하지 말아라 길 시작..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12
어머니 정원 어머니 정원 / 이 효 햇살이 부러진 날개로 파닥 거리는 오후 창문 앞에 앉은 어머니 늘어진 두 볼은 세월만큼 무겁습니다 창문 넘어 붉은 꽃봉오리 아버지 살아생전 환한 미소 어머니 홀로 남겨놓고 가실 줄 어찌 아시고 당신 닮은 모란 가지 곱게 땅에 꼽아 놓으셨나요 모란꽃이 필 때면..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12
강아지 끈 강아지 끈 / 이 효 꽃이 진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에 네가 떠날까 봐 내 마음이 형광등처럼 깜박 거린다 너는 오늘 밤 얼마나 긴 편지를 쓰길래 바닥에 누런 잎으로 둘레길 만들어 놓았니 내가 목련꽃 마음도 모르는데 네가 어..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