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186

님이되어 오시는 날(자작 시)

님이되어 오시는 날 할머니 소원은 소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쟁과 찢어진 가난은 할머니 꿈도 말려버렸다. 책상 위에 덩그런한 연필 한 자루 할머니는 이름 석자 삐뚤빼뚤 쓰신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밤마다 찬 바람 소리로 오신다. 할머니, 님자 한 번 배워보실래요. 요즘 아이들이 점하나 붙이면 남이래요. 버럭 화를 내시는 할머니 한 평생 밥을 같이 먹고살았는데 어찌 남이냐 남자에 침 묻혀가며 점하나 애써 지우신다. 남이 다시 님이되어 오시는 날이다.

바람 같은 노래 (자작 시)

바람 같은 노래 / 이 효 세상이 온통 푸른 물감으로 물이들었다. 땅에 뿌리박고 춤추는 무희도 하늘을 나는 나비도 청춘의 마음속에 무거운 돌들 화려함도 남루함도 이 순간 만큼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웃자. 여름이 붉게 운다. 세상이 온통 녹색에 감옥에 갇혔다 소녀들아, 소년들아 일어나 나비처럼 날아라 벽의 절망을 뚫고 빛으로 나가자 바람 같은 노래가 아프지만 부르지 않는 것보다 낫다 너는 아직 청춘이니까

씨앗 값 (자작 시)

씨앗 값 / 이 효 돌짝밭에 심은 어린 배추 비 맞고 한 뼘이나 자랐네 뽑아서 삶아 나물 무칠까? 아니 된장 풀어 국 끓일까? 돌짝밭 뚫고 올라온 푸른 잎들 어찌 입안에 넣어 씹을까 손으로 만져보길 수십 번 망설이다 눈에만 넣었다 새벽부터 인사 나누는데 모가지가 전부 잘려나갔다 어머니 밤사이 도둑 들었소 고라니 짓이다 씨앗 값 안 나온다 심지 말라던 어머님 말씀 돌짝밭 갈고, 물 주고 고리니가 한순간 꿈을 삼켰다 대면한 적 없는 고라니 미워할까? 말까? 마음에 불이 난다 파란 하늘이 내게 묻는다 너는 누군가에게 씨앗 값 되어본 적 있냐고~

경숙이 (자작 시)

경숙이 / 이 효 경춘선 숲길 끝에 하얀 대문이 있는 집 텃밭에 감자랑 고구마랑 토마토가 달처럼 웃는다 텃밭 둘레에는 어린 코스모스 자란다 이년아! 먹지도 못할 코스모스 왜 심어 놓았니? 달맞이꽃 닮은 친구는 마을 사람 보란다 애호박, 상추 따놓았으니 호박 부침개 먹고 가란다 경숙이표 계절 밥상 한 상 받아 보란다 이년아! 너나 많이 먹어라 친구가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는 것이 싫어 하얀 대문을 나온다 경춘선 숲길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는다 그녀는 내 마음에 속에 터널 하나 숭숭 뚫어 놓았다 한 여름이 곱게 달린다

부르지 못한 노래 (자작 시)

부르지 못한 노래 / 이 효 바람이 스쳐 간다 머리카락이 비명을 지른다 바람을 막으며 가는 사람 바람을 맞으며 가는 사람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내 마음을 벌거숭이 만드는 자여 청춘은 산에 불을 지피지만 파르르 떠는 잎 하나 산모퉁이 벤치에 젖은 마음 한 장 올려논다. 꽃도 울다 지쳐 떨어지는데 벌거숭이 산을 마주한들 무엇이 두려우라 산은 깊고 푸른데 옹달샘 물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은 톡 톡 톡 어떤 약속 하나 없이 봄날은 간다 부르지 못한 노래를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