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발 (자작 시) 까치 발 / 이 효 아파트 벽 외줄 사람이 매달려있다. 정오의 태양이 파란색 페인트를 뿜어낸다. 희망일까? 절망일까? 내 몸 안에 시가 한 줄이 매달려 있다. 석양을 바라보는 파도는 넘칠까? 부서질까? 뾰족한 연필 위 까치 발로 선다. 엄지발가락에 희망과 절망이 아찔하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6.09
돌짝밭 (자작 시) 돌짝밭 / 이 효 돌짝밭이 울었다 씨앗을 품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머리를 짓누르는 돌이 무겁다. 흑수저는 울었다 꿈을 품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삶을 짖누르는 돈이 무겁다. 내게 물을 주는 자 누구인가? 사람들이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자 모두가 끝을 말할 때 시작을 말하는 자 입안 한가득 붉은 고추장을 찍은 쌈이 파랗게 피어난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6.07
구름 ( 자작 시 ) 구름 / 이 효 하늘은 푸른 은막 구름은 춤추는 무희 뻐꾸기 소리 장단 맞춰 북쪽 고향으로 흐른다 뒤늦게 핀 철쭉꽃 나도 함께 가련다 멀리서 들리는 바람 소리 구름 위로 철쭉 꽃 들어 올린다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 새색시 연분홍 치맛자락 서쪽 하늘에 펄럭인다 꿈이라도 좋다 한 번만이라도 구름 따라 고은 치맛자락 입고 하늘에서 돌아봤으면 좋겠다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뻐꾸기 소리 장단 맞춰 구름 따라 고향 가는 꿈을 꾼다. *살아생전에 북쪽 고향을 그리워 하셨던 아버님 생각이 나네요.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6.06
횡성호 (자작시) 횡성호 / 이 효 어젯밤 내린 비에 호수가 울고 있다.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호수는 눈물 거둔다 배시시 웃는 넓은 얼굴로 타지에서 오신 님에게 미소 짓는다. 호수는 나무들을 받아들여 옥색으로 물든다. 정녕 울어야 할 사람은 난데 세월에 쓰러진 소나무가 먼저 물에 들어간다. 울음을 참었더니 내 안에 깊은 호수 하나 생겼다 오늘 너처럼 누군가에게 호수를 내어준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29
눈먼 당신(자작 시) 눈먼 당신 / 이 효 유월이 오기 전에 나는 떠나야 하는데 겹겹이 쌓아 올린 꽃봉오리 지나가는 행인들 내 향기에 취할까 봐 담장 위로 달아납니다. 도시 사람들이 무심히 눌러대는 셔터 소리에 수많은 가시들 뽑아 마음 밭에 울타리를 두릅니다. 유월이 오기 전에 나는 떠나야 하는데 계절마다 당신을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린 붉은 연정 태양 앞에 활짝 펼쳐 놓아도 보지 못하는, 눈먼 당신 안에서부터 터져버린 붉은 울음 하늘을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19
하늘에 도장 찍기 (자작 시) 하늘에 도장 찍기 / 이 효 선홍빛 구두 신고 날 유혹하러 왔나요 그대 가슴에 머물 수 없어요 검정 운동화 신고 난 자식들 먹여 살려야 해요 오월에 여왕이 왔는데 내 선홍빛 입술은 흙장미가 되어 버렸어요. 짙은 입술로 하늘에 도장 찍어요 내년에는 꼭 눈 맞춤해요. 잘 가요.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17
가시 (자작시) 가시 / 이 효 어두운 세상 머리 들고 붉은 벽돌 틈새로 오른 풀 이 봄날 누군가의 손아귀에 잡혀 머리채 뽑혀도 또 올라오는 풀 사랑의 날개 부러진 날 세상 짐 지고 바다로 간다 파도에 몸을 맡긴 순간 누군가 머리채 잡아 올린다 붉은 벽돌이고 오른 풀 숱한 슬픔 하늘 적신다 바윗처럼 ..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16
맨발의 봄 (자작 시) 맨발의 봄 / 이 효 식탁 위에 자식들이 하나 둘 놓고 간 꽃바구니 가득하건만 늙으신 어머니 창가에 앉아 어젯밤에 내린 비를 원망한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붉은 작약이 진자리 옆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손길 닿은 수국이 연이어 활짝 피는데 어젯밤 내린 비에 하얀 꽃잎 바닥에 수북하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12
감악산 운무 감악산의 운무 / 이 효 쏟아내고 싶다 나무가 비의 마음을 알고 소리 없이 밤새도록 비를 받아주듯이 쏟아내고 싶은 마음 내 마음을 누가 알까 그 마음 붉게 우는지 시퍼렇게 우는지 감악산은 내 마음을 알까 굳은 바위 같은 마음을 출렁거리는 세상을 건너 감악산에 오른다 운무처럼 잡..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10
고마운 햇살(자작시) 고마운 햇살 / 이 효 오랜만에 찾아간 아버지 산소 서리가 곱게 뿌려졌습니다 차가운 서릿발 속에서도 질기게 올라오는 잡초들 너는 살겠다고 올라오고 나는 죽이려고 목을 비틀고 인생이 다 그렇지 수술대 위에서 생명 끈 놓으시고 이젠 그만 살련다 오늘은 늙은 딸이 찾아왔습니다. 멀..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