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170

그림 / 이 승 희

그림 / 이 승 희 ​ ​ 가증스러운 눈물 / 이 효 ​ 하나님 당신의 제단 앞에서 거짓의 눈물 흘린 것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별들도 숨을 죽이고 자는 이 밤에 당신의 목소리 듣고 싶어 엎드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거짓 눈물을 흘렸어도 미워하지 마시고 용서하소서 당신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당신입니다 물고기들을 바다에서 춤추게 한 당신입니다 꽃들을 벌판에서 날개 한 당신입니다 ​ 아!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빛을 내신 분입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내 어미의 생명을 살려주소서 ​ 가증스런 눈물이라도 받아주소서 고마운 이웃님들^^ 푸른언덕 블로그를 잠시 쉽니다. ​

칼라 복사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칼라 복사 / 이 효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 사자 뒷모습처럼 당당하다 공부보다 딱지치기 좋아했던 나 고아원에 남아 허드렛 일하며 원장님 곁을 맴돌았다 세월이 흘러 사자들은 머리에 박사 왕관까지 쓰고 나타났다 나는 명절날 뒷마당만 쓸었다. 원장님이 돌아가신 날 소나무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겸손하게 살아라 가방끈 보다 긴 잔소리 한 평생 귓가를 맴돌았던 목소리 뒷산에 등 굽은 소나무 한 그루 매일 등산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내 등을 닮은 소나무 보기 싫어 하루는 톱을 갖고 산에 올랐다. 저놈의 소나무 밑동을 잘라 버려야지 날카로운 톱날 돌아가는 소리 원장님의 울음소리 하얗게 눈발로 날린다 오늘 아침 마음에서 뽑은 칼라 복사 굽은 소나무 한 장 선명하다.

장미역 4번 출구

그림 : 김 정 수 장미 역 4번 출구 / 이 효 울음이 검은 잎 뒤로 숨을 때 친구의 붉은 장미꽃 한 바구니 정오 같은 미소로 겹겹이 내게로 왔다 지난밤 꿈에서 길을 잃은 내게 장미의 환한 미소는 하늘처럼 열렸다 가랑잎 한 장처럼 떨고 있는 내게 장미 꽃잎으로 징검다리 놓아 주었다 세상이 마지막 남은 사랑을 빼앗아가 절망 가운데 무너질 때 장미꽃은 별처럼 나를 위로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공포가 절벽처럼 크게 느껴질 때 눈에서는 붉은 눈물도 마르더라 내 무너지는 마음을 가시로 찔러 주었지 정신 차리라 했다 모질게 살라 했다 친구는 내게 장미 역 4번 출구를 열어주었다.

누구 어디 없소

그림 : 이 승 희 누구 어디 없소 / 이 효 가죽만 남은 산등성 당신이 그리워 올라갑니다 멀리 보이는 숲에는 참았던 눈물 흰 눈으로 내립니다 당신 닮은 어린 바위는 물뺀 심장이 무너져 내릴까 뜬눈으로 산을 지킵니다 산은 자꾸 돌아눕습니다 바람이 싫다던 산등성에는 잔기침이 모질게 붑니다. 홍매화는 언 눈 속에서 얼굴을 내미는데 거름 걸이 멈춘 당신의 봄은 어두운 산속에서 길을 잃습니다 누구 어디 없소 어머니의 봄을 업고 내려 올 사람

뒷모습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뒷모습 / 이 효 ​ 앞집 훈이 아저씨가 은퇴를 하셨다 병원장님 댁 정원사로 일을 하셨다 빠른 손놀림을 눈여겨 본 병원장님은 아저씨를 병원 기관실로 보내셨다 첫 출근이었다 ​ 아저씨 인생이 별거 아니라는 사람들 그래도 새벽부터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아저씨는 병원 문턱이 닳도록 일을 하셨다 열등감 따위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어린 아들을 세명이나 키워야 했다 한 평생 전투를 하듯이 살아온 인생도 국수발 잘리듯이 잘여나가는 시간이 왔다 은퇴를 하란다. 느린 손놀림은 헛헛한 웃음만 자아낸다. ​ 마지막 퇴근길에 아픈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병원 앞 욕쟁이 할머니네서 만둣국을 포장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뒤지지 말고 살란다 상 위에 오른 만두를 자른다 아직도 배가 통통해서 견딜만한데..

함박 웃음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 함박 웃음 / 이 효 ​ ​ 창문 넘어 함박 눈이 내린다 하늘이 환하게 웃는다 ​ 유리병에 붉은 수국이 피었다 식구들이 환하게 웃는다 ​ 당신도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환하게 웃어준 적 있는가 ​ 웃긴 세상에 실없이 웃는 날 정말 많았다 상인들도 실없이 웃고 행인들도 실없이 웃었다 ​ 유리병처럼 코로나로 갇힌 세상이지만 단 하루 만이라도 하늘을 바라보자 가슴에서 멍이 녹아내린다 ​ 눈물이 눈으로 벙글 거린다 땀이 수국으로 벙글 거린다 나도 내일을 향해 벙글 거린다 ​

해장국 끓이는 여자와 꽃

그림 : 김 정 수 ​ 해장국 끓이는 여자와 꽃 / 이 효 ​ 사람들이 잠든 새벽 해장국 끓이는 여자는 가슴에 꽃씨를 품는다 ​ 내일은 해장국집 간판 내리는 날 애꿎은 해장국만 휘휘 젓는다 ​ 옆집 가계도, 앞집 가계도 세상 사람들이 문 앞에 세워놓은 눈사람처럼 쓰러진다 희망이 다 사라진 걸까 ​ 화병 안에 환하게 웃고 있는 꽃송이 하나 뽑아 가계 앞 눈사람 가슴에 달아준다 ​ 무너지지 마 오늘 하루만 더 버텨보자 폭풍 속에 나는 새도 있잖아 ​ 가마솥에 꽃이 익는다 여자는 마지막 희망을 뚝배기에 담는다 눈물 한 방울 고명으로 떠있다 ​

부엌 앞에 선 바람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부엌 앞에 선 바람 / 이 효 낡은 부엌문 바람이 두들기는데 그대 문 열어준 적 있는가 차가운 빈 그릇에 바람 소리 말을 더듬고 누군가는 마음에 붉은 사랑 담아내는데 내 마음은 닫혀있는 고양이 눈 찬 부뚜막에 엎드려 기도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부엌에 온기를 넣는 것 둥근 밥상에 수저 두 개 올려놓고 비린내 나는 생선을 굽는 일 차가운 바람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살며시 부엌 문을 열어주는 것 부뚜막 위로 햇살이 엎질러지고 바람은 잠시 단추를 채우고 돌아나간다 그림자처럼 춥고 외로운 사람들 쓰러진 술병처럼 몸이 얼었다 녹는다 산산이 발려진 생선 가시들의 잔해들 무표정한 가시들을 모아 땅에 묻는다 상처 난 것들 위로 첫눈이 하얗게 내린다 바람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