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칼라 복사 / 이 효

푸른 언덕 2021. 2. 3. 21:45

그림 : 김 정 수


칼라 복사 / 이 효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
사자 뒷모습처럼 당당하다
공부보다 딱지치기 좋아했던 나
고아원에 남아 허드렛 일하며
원장님 곁을 맴돌았다

세월이 흘러 사자들은 머리에
박사 왕관까지 쓰고 나타났다
나는 명절날 뒷마당만 쓸었다.
원장님이 돌아가신 날
소나무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겸손하게 살아라
가방끈 보다 긴 잔소리
한 평생 귓가를 맴돌았던 목소리
뒷산에 등 굽은 소나무 한 그루
매일 등산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내 등을 닮은 소나무 보기 싫어
하루는 톱을 갖고 산에 올랐다.
저놈의 소나무 밑동을 잘라 버려야지
날카로운 톱날 돌아가는 소리
원장님의 울음소리 하얗게 눈발로 날린다

오늘 아침 마음에서 뽑은 칼라 복사
굽은 소나무 한 장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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