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아버지 12

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 / 최금진

그림 / 강선아 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 / 최금진 가난한 아버지는 가난한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학교 가는 아들 앞에 초라하지만 정성스럽게 상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가난이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먹어! 어서 먹어! 안 먹어? 아버지는 가난한 자신이 부끄러워 화를 냈습니다 자신 앞에 누워있는 어리고 착한 가난의 뺨을 힘껏 때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의 배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먹어! 어서 처먹어! 그 아들도 커서 똑같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이제 그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직장도 없는 그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툭하면 술 먹고 손버룻 나쁜 남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뚝! 그쳐! 안 그쳐! 이런 식으로 울음을 달래는 가난한 가장을 아무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최금진 시집 / 새들의 역사

꽃 피는 아버지 / 이성복

그림 / 서정철 꽃 피는 아버지 / 이성복 아버지 만나러 금촌 가는 길에 쓰러진 나무 하나를 보았다 흙을 파고 세우고 묻어주었는데 뒤돌아보니 또 쓰러져 있다 저놈은 작부처럼 잠만 자나? 아랫도리 하나로 빌어먹다 보니 자꾸 눕고 싶어지는가 보다 나도 자꾸 눕고 싶어졌다 나는 내 잠 속에 나무 하나 눕히고 금촌으로 갔다 아버지는 벌써 파주로 떠났다 한다 조금만 일찍 와도 만났을 텐데 나무가 웃으며 말했다 고향 따앙이 여어기이서 몇 리이나 되나 몇 리나 되나 몇리나되나.....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이 노래 불렀다 내 고향은 파주가 아니야 경북 상주야 나무는 웃고만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쓰러진 나무처럼 집에 돌아왔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내가 떨어뜨린 가랑잎이야 이성복 시집 / 뒹구는..

의자 / 이정록

그림 / 김 연 제 ​ ​ ​ ​​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 * 이정록 시집 / 의자 ​ ​ ​ ​ ​ ​

생각하믄 뭐하겄냐 / 강 경 주

그림 / 정 은 하 생각하믄 뭐하겄냐 / 강 경 주 손 한번 안 잡아주고 혼자 훌쩍 떠나더니 요새 부쩍 네 아부지가 밤마다 왔다 간다 뒤밟아 따라가다가 까마득 놓치곤 한다야 오라는 건지 있으란 건지 희미한 그 손짓 막걸리도 안 마셨는데 눈앞이 어룽하다 생각함 다 뭐하겄냐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니고 강경주 시집 / 노모의 설법

새 1 / 이 남 우

​심정수 작품 (1) ​ 새 1 / 이 남 우 ​ ​ 들 논 트랙터 지나간 자리에 가지런히 꽂힌 나락 하늘 파란 구름은 눈에 잡히는 아버지 그리고 가슴에 스며오는 바람 이야기 차라리 구분하지 않았으면 내게 서러움이 없을 논두럭 새는 벌레 잡기에 지 생명 걸지만 보는 나 그 날갯짓에 목숨을 걸....... ​ ​ ​ 이남우 시집 : 나무 ​ ​ ​ ​ ​ ​ 심정수 작품 (6)

할미꽃과 어머니의 노을 / 최 효 열

그림 : 박 인 선 ​ ​ 할미꽃과 어머니의 노을 / 최 효 열 ​ ​ 어머니는 살아서도 할미꽃, 굽어진 등 너머 팔순세월 마디마디 새겨진 사연 아버지 무덤에서 핀다 당신을 여의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감내하며 살아 온 길, 미운 정 고운 정 곱씹으며 푸념 담아 당신에게 올리는 잔 추억으로 피는 그리움이라고, 사랑이라고 살아서도 할미꽃으로 핀다 변화하는 세월 저 깊은 곳에 담겨진 보릿고개보다 외로움을 삭히셨을 눈물로 보낸 세월이 소리 없는 아픔으로 가득한데 산새 사랑가 오리나무에 걸터앉아 울고 오던 길 더듬는 어머니 머리위로 이는 붉은 노을이, 서산으로 어머니의 노을이 진다.

뒷모습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뒷모습 / 이 효 ​ 앞집 훈이 아저씨가 은퇴를 하셨다 병원장님 댁 정원사로 일을 하셨다 빠른 손놀림을 눈여겨 본 병원장님은 아저씨를 병원 기관실로 보내셨다 첫 출근이었다 ​ 아저씨 인생이 별거 아니라는 사람들 그래도 새벽부터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아저씨는 병원 문턱이 닳도록 일을 하셨다 열등감 따위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어린 아들을 세명이나 키워야 했다 한 평생 전투를 하듯이 살아온 인생도 국수발 잘리듯이 잘여나가는 시간이 왔다 은퇴를 하란다. 느린 손놀림은 헛헛한 웃음만 자아낸다. ​ 마지막 퇴근길에 아픈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병원 앞 욕쟁이 할머니네서 만둣국을 포장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뒤지지 말고 살란다 상 위에 오른 만두를 자른다 아직도 배가 통통해서 견딜만한데..

나무 한 그루 / 이 효 (자작 시)

그림 : 최 선 옥 ​ ​ 나무 한 그루 / 이 효 ​ 팔순 노모 새 다리 닮은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는다 저 다리로 어찌 자식들 업고 찬 강물을 건넜을까 ​ 찬바람 부는 날 아버지 닮은 나무 옆에 앉는다 영감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가야겠소 나무는 대답이 없다 ​ 텅 빈 공원에 쪼그만 새를 닮은 어머니 훌쩍 어디론가 날아갈까 봐 내 가슴에 푸른 나무 한 그루 부지런히 눈물로 키운다. ​ 눈에는 붉은 산이 들어앉아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