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 1363

나그네새 / 정호승

​ ​ ​ ​ ​ 나그네새 / 정호승​ ​ ​ 너 없이 내가 살고 어찌 죽으랴 사나이 집 떠나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데 철쭉꽃 피면 내가 울고 찔레꽃 지면 누가 우나 깊은 강 붉은 땅 너머 너는 어디에 다시 살아오지 않는 나그네새여 저녁 해거름 쓸쓸히 땅거미 질 때마다 너 없이 내가 살고 어찌 죽으랴 ​ ​ ​ ​ 정호승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 ​ ​ ​ ​​ ​ ​ ​

내 여인이 당신을 생각한다 / 신현림

그림 / 김은숙 ​ ​ ​ ​ ​ ​ 내 여인이 당신을 생각한다 / 신현림​ ​ ​ 저녁 태양은 빵같이 부풀고 언덕은 아코디언처럼 흘러내립니다 거리에 북풍이 넘치도록 그녀가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연히 만난 길과 알 수 없는 희망이 들뜬 날들을 소리가 아픈 풍금이 북풍따라 노래하고 당신에게 나던 사막의 붉은 냄새가 몰려옵니다 잠시 바라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나요 그냥 앞에 계시는 것만으로 기쁨에 넘쳐 봤든가요 소중해서 숨긴 애정의 힘이 비탈길을 오르게 합니다 정든 이의 행복을 빌고 하늘에 새들이 날아드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헤어져야 합니다 그녀는 그런 당신의 수묵화입니다 수묵화 한 장이 비바람에 젖습니다 뱃사람이 풍랑을 이기며 바다를 밀고 가듯 사람은 저마다 추억을 견디며 오늘을 건넙니다 ​ ​ ​ ..

득주지우(得珠之憂) / 고운기

그림 / 박옥자 ​ ​ ​ ​ ​ 득주지우(得珠之憂) / 고운기​ -삼국유사에서2 ​ ​ ​ 어린 스님 한 사람이 샘 가에서 바리때를 씻다가 자라에게 남은 음식을 주며 놀았다. ​ -내가 너에게 덕을 베푼 지 여러 날인데 무엇으로 갚아 주겠니? ​ 며칠이 지나, 자라가 작은 구슬 하나 뱉어 냈다. 어린 스님은 그 구슬을 허리띠 끝에 달고 다녔다. 그로부터 사람마다 매우 아껴 주었다. ​ 서울역 앞 1970년대 장사 잘되던 목욕탕에 고용된 이발사 김 씨 주인 아들이 치과 대학 졸업할 때까지 십 년 넘게 머리 깎아 주었다 ​ -내가 나중 늙거든 내 이빨은 네가 맡아 주겠니? ​ 삼십 년이 지나, 아들은 강남에서 돈 많이 번 의사가 되었다. 이미 아주 부자인 동기생 아가씨와 결혼하고 차린 병원은 예약 없이 못..

봄의 노래 / 고운기

그림 / 손정희 ​ ​ ​ ​ ​ 봄의 노래 / 고운기​ ​ ​ ​ 봄은 왔다 그냥 가는 게 아니다 ​ 봄은 쌓인다 ​ 내 몸은 봄이 둘러 주는 나이테로 만들어졌다 스무 살 적 나이테가 뛰기도 하고 그냥 거기 서 있으라 소리치기도 한다 ​ 어떤 항구의 풍경이 그림엽서 속에 잡히고 봄밤을 실어 오는 산그늘에 묻혀 어둠이 어느새 마을을 덮어 주는 내내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 봄은 왔다 그냥 가지 않는다 ​ ​ ​ ​ 고운기 시집 /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 ​ ​ ​ ​ ​ ​

출력할 수 없는 사람 / 이현경

그림 / 손정희 ​ ​ ​ ​ ​ ​ 출력할 수 없는 사람 / 이현경​ ​ ​ ​ 기억 저편에서 비가 내린다 ​ 나의 구간에서 사무침이 젖어 흘러내린다 ​ 당신 시간이 내게 건너올 때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던 사람 ​ 함께했던 시간의 타래가 풀리어 깨진 하트 사이로 빠져 나갔다 ​ 내 중심에 싱크홀만 남기고 가버린 사람 ​ 돌아올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지막이란 단어를 읽다가 깨물던 입술 ​ 이제는 출력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 ​ 아직도 두근거리는 생이 다 소멸될 때까지 당신의 회로를 차마 지울 수 없다 ​ ​ ​ ​ 이현경 / 허밍은 인화되지 않는다 ​ ​ ​ ​ ​ ​ ​​ ​

생명을 품은 씨앗 / 법정

그림 / 국흥주 ​ ​ ​ ​ ​ ​ 생명을 품은 씨앗 / 법정 ​ ​ 씨를 뿌리고 그대로 두면 새가 날아와 쪼아 먹을 수도 있고 뜨거운 햇볕에 말라 버리기도 한다 ​ 하나의 씨앗이 땅에 심어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햇살도 물도 공기도 사람들의 정성도 함께 있어야 한다 ​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앗은 생명을 품지 못하듯 ​ 미래라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음이니 ​ 미래라는 열매를 튼실하게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재능이란 씨앗에 열정이란 숨결을 끊임없이 불어넣어야 한다 ​ ​ ​ ​ 시집 (김옥림) / 법정 시로 태어나다 ​ ​ ​ ​ ​ ​ ​

오 남매 / 박은영

그림 / 김진구 ​ ​ ​ ​ 오 남매 / 박은영​ ​ ​ 파지 줍던 할머니가 죽었다 ​ 자식 놈들 키워 놔 봤자 암 소용없는겨, 빌어먹든 어쩌든 염병 내 알 바 아녀. ​ 연락 끊긴 자식들을 파지 사이 끼우고 고된 길을 끌던 할머니, 구겨진 걸음에 염을 한다 빈 리어카에서 내린 바람이 창고 문을 여는 밤, 쏟아지는 파지들, 염장이가 진물 고인 발바닥을 닦아 낸다 ​ 거기, ​ 옹송그려 박여있는 ​ 티눈 다섯 개 ​ ​ ​ ​ 박은영 시집 / 구름은 울 준비가 되어 있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