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 김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5.26
애기똥풀 애기똥풀 /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문학이야기/명시 2020.05.25
오늘 오늘 / 김선우 여기는 경유지가 아니다. 여기를 저 높은 문을 위해 인내해야 하는 경유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침묵할 것을 요청한다. 나는 내 책상 위에 최선을 다해 오늘의 태양을 그린다. 여기는 내일로 가는 경유지가 아니다. 나는 날마다 꽃핀다.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나의 태양과 함께. 다른 사람이 보기에 덜 핀 꽃이어도 나는 여기에서 완전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5.23
너의 하늘을 보아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문학이야기/명시 2020.05.20
장미꽃 장미꽃 / 권오삼 화병에 꽂아 두었던 빨간 장미꽃 한 송이 자주빛으로 쪼그라진 채 말라죽었다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무심코 꽃송이에 코를 대어 봤더니 아직도 은은한 향내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도로 꽃병에 꽂았다 비록 말라죽기는 했지만 향기만은 아직 살아 있기에 죽으면서도 향기만은 빼앗길 수 없다는 듯 품속에 꼬옥 품고 있는 장미꽃 꼭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5.19
등꽃, 등꽃 등꽃, 등꽃 / 안 도 현 등꽃이 피었다 자국이다, 저것은 허공을 밟고 이 세상을 성큼성큼 건너가던 이가 우리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내 사는 꼴 들여다보고는 하도 우스워 혼자 키득거리다가 그만 나한테 들키는 순간이었는데, 급한 김에 발자국만 여러개 등나무에 걸어놓고 이 세상을 .. 문학이야기/명시 2020.05.15
처음은 다 환했다 처음은 다 환했다 / 김용택 매미가 운다 매미 소리에게 내 마음을 준다 남보라색 붓꽃이 피었다 꽃에게 내 마음을 준다 살구나무에 바람이 분다 바람에게 내 마음을 준다 날아가는 나비에게 가만히 서 있는 나무에게 마음을 주면 나비도 나무도 편해지고 내 마음이 편해진다 흘러가는 저.. 문학이야기/명시 2020.05.13
봄길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졌다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 문학이야기/명시 2020.05.11
거문고의 노래3 (백제금동대향로) 거문고의 노래3 (백제금동대향로) / 나호열 저 저어기 허공을 딛고 피어나는 꽃이라니 텅 터어엉 가슴을 비우고 그 위에 바람 몇 줄 걸어놓으면 꽃신 신고 사뿐히 화르르 날아오르는 새떼이려니 계면조의 하늘을 자진모리로 떠가는 구름 인적은 없어도 늘 부화를 기다리는 슬픔으로 따뜻.. 문학이야기/명시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