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없다 추억이 없다 / 정호승 나무에게는 무덤이 없다 바람에게는 무덤이 없다 깨꽃이 지고 메밀꽃이 져도 꽃들에게는 무덤이 없다 나무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으로 걸어가던 들판이 없다 첫눈 오던 날 첫키스를 나누던 그 집 앞 골목길도 사라지고 없다 추억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 추억이 없.. 문학이야기/명시 2020.05.05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 이근대 귀에 들린다고 생각에 담지 말고 눈에 보인다고 마음에 담지 마라 담아서 상처가 되는 것은 흘려버리고 담아서 더러워지는 것은 쳐다보지 마라 좋은것만 마음에 가져 올 수 없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지워버려라 귀에 거슬린다고 귀를 막아.. 문학이야기/명시 2020.05.03
하루살이 하루살이 / 이 윤 학 얼마나 열심히 죽어왔던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태어났던가 불빛을 둘러싸고 빙빙 도는 하루살이떼는 줄어들지 않는다. 타 죽지 않으면 떨어져 죽을 목숨들에게 날개란 무엇인가..... 삶이 한없이 황홀해 보인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5.02
엎드린 개처럼 엎드린 개처럼 / 문태준 배를 깔고 턱을 땅에 대고 한껏 졸고 있는 한 마리 개처럼 이 세계의 정오를 지나가요 나의 꿈은 근심없이 햇빛의 바닥을 기어가요 목에 쇠사슬을 묶인 줄을 잊고 쇠사슬도 느슨하게 정오를 지나가요 원하는 것은 없어요 백일홍이 핀 것을 내 눈속에 보아요 눈을 .. 문학이야기/명시 2020.04.30
수화기 속의 여자 수화기 속의 여자 / 이명윤 (2006 전태일문학상 수상작) 어디서 잘라야 할 지 난감합니다. 두부처럼 쉽게 자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어딘지 서툰 당신의 말, 옛 동네 어귀를 거닐던 온순한 초식동물 냄새가 나요. 내가 우수고객이라서 당신은 전화를 건다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수.. 문학이야기/명시 2020.04.29
새벽에 들은 노래 3 새벽에 들은 노래 3 / 한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문학이야기/명시 2020.04.25
아침을 기리는 노래 아침을 기리는 노래 / 문태준 시간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누어 주시네 햇볕,입술 같은 꽃,바람 같은 새,밥,풀잎 같은 잠을 나는 매일 아침 샘에 가 한통의 물을 길어 오네 풀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내 앞에는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 갈림길과 .. 문학이야기/명시 2020.04.24
알맞은 거리 알맞은 거리 / 나 호 열 너는 거기에 나는 이 자리에 당신 곁에 머물면 화상을 입고 당신 곁을 떠나면 동상에 걸린다 그래서 길이 태어나고 너른 들판이 뛰어오지 눈빛으로 팔을 건네는 아득하지 않은 아득한 거리 그 여백은 아쉬움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번지는 점자로 읽는 바람 채찍이 .. 문학이야기/명시 2020.04.23
소리에 기대어 소리에 기대어 / 나희덕 가로수 그늘에 몸을 기대고 앉아 밤하늘 올려다본다 별 몇 개가 떨어졌는지 잡풀 뒤에 숨어서 누가 울고 있다 쓰르라민가, 풀무친가, 아니면 별빛인가 누구인들 어떠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저 소리 충만을 이내 견디지 못하는 나는 다시 하늘을 본다 눈 멀어지니 .. 문학이야기/명시 2020.04.22
첫사랑 첫사랑 / 김용택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 옷도 아, 꿈같던 그 때 이 세상 전부 같았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진달래처럼 아, 그렇게 놀라운 세상이 내게 새.. 문학이야기/명시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