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소리에 기대어

푸른 언덕 2020. 4. 22. 21:38

 

소리에 기대어 / 나희덕

 

가로수 그늘에 몸을 기대고 앉아

밤하늘 올려다본다

별 몇 개가 떨어졌는지

잡풀 뒤에 숨어서 누가 울고 있다

 

쓰르라민가, 풀무친가, 아니면 별빛인가

누구인들 어떠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저 소리

충만을 이내 견디지 못하는 나는

다시 하늘을 본다

 

눈 멀어지니 귀도 멀어졌다

그러나 소리 희미해질수록

마음은 가까워졌다

소리는 풀잎 뒤애서가 아니라

내 마음 어느 갈피에서 나는 것 같다

 

소리내는 그것을 만져보려고

풀잎을 쓰다듬으니 소리는 온데간데 없다

가까이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들이여

내 안에 있지만 또한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들이여

 

너는 해진 옷 끌고 와 여기서 울고

나는 그 옷자락나 만지다 돌아갈 뿐

사라진 그 소리에

잠시 기대어 앉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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