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가시 정호승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 문학이야기/명시 2020.03.09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 문학이야기/명시 2020.03.07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 않.. 문학이야기/명시 2020.03.04
그늘 학습 그늘 학습 함민복 뒷산에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치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3.03
꽃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 문학이야기/명시 2020.03.01
꽃 꽃 기형도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않는 그대 정원에서 온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2.29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 / 손택수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들 듯 이불 돌돌 아랫도리에 손을 데우며, 창문 너머 금 간 하늘 아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전학 온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보, 고, 싶, 다, 보, 고, 싶, 다 눈이 .. 문학이야기/명시 2020.02.26
찔레꽃 찔레꽃 / 오세영 수인으로 남기 보다는 차라리 창녀로 살고 싶다 아름다움은 왜 항상 갇혀 있어야만 하는가? 아름다움의 밖이 기쁨이라면 그 안은 슬픔이다. 서슬푸른 가시로도 지킬 수 없는 하늘, 사랑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는 것을 일컬음이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02.26
또 기다리는 편지 또 기다리는 편지 정 호 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 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 문학이야기/명시 2020.02.25
꽃잎 하나 꽃잎 하나 차장호 석류 꽃잎 하나 진다 말없이 지는 그때 빗물에 비쳐서 떨어지고 내 눈에 비쳐서도 떨어진다. 처마 밑에 들어온 길 길 앞을 막고 선 벽 집 안에 엎드린 강아지도 보았다 사랑보다 더 뜨겁게 적막보다 더 고요히 몸에서 내리는 꽃잎 하나 하나의 꽃잎은 얼마나 환하기에 어.. 문학이야기/명시 202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