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그림 : 오순환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 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

오래 다닌 길 / 이 어 령

그림 : 이 승 희 ​ ​ 오래 다닌 길 / 이 어 령 ​ ​ 잊고 있던 이름들이 문득 돌아와 생각나듯이 지금 바람이 분다. ​ 파란 정맥이 전선 줄처럼 우는 골목 다들 어디 가고 여기서 바람소릴 듣는가. ​ 식은 재를 헤집듯이 잃어버린 이름을 찾는다. 정원이 홍근이 원순아 그런 날 밤새도록 바람이 불면 보고싶다 오래 다닌 길. ​ ​ ​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눈부처 / 정호승

그림 : 이 승 희 ​ ​ 눈부처 / 정 호 승 ​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꽃을 보려면 / 정 호 승

그림 : 이 승 희 꽃을 보려면 / 정 호 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시집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 송 경 동

그림 : 이 승 희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 송 경 동 몇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묵은 시간은 없다. 늙은 채 오는 시간도 없다. 매 순간 시간은 샘처럼 솟아 나온다. 매 순간 시간의 봉우리는 피어난다. 그래서 한 시인은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을랴 /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라고 노래했다.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은 맨 처음이며 우리는..

호수 / 정 지 용

그림 : 이 승 희 호수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밖에. 눈을 감는 행위를 통해서 그 보고 싶은 마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계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님 을 말한다. 짧은 시지만 이 시를 거듭해서 읽을수록 내부는 무안 해진다. 시집 :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두 마음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두 마음 / 이 효 ​ 외출하고 돌아왔다. 붉은색 원피스도 모자도 벗는다 모자를 의자 모서리에 걸었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이 난다 ​ 인간의 높고자 하는 욕망 틀어논 수도꼭지 같다 하이힐만큼이나 꽃이 달린 모자만큼이나 내 안에 꽈리를 틀고 춤추는 너 ​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신선들 밤에 빛났던 불빛들 새벽 자동차 바퀴에 깔린 시간들 모자 속에 숨었던 새가 둥지에서 작은 깃털이 되는 순간이다 ​ 내일 아침 다시 모자를 쓰고 나갈까 아니, 다시는 모자를 쓰지 말자 두 마음이 키스를 한다 ​ 바벨탑을 오르는 모자들 발자국의 웅성거림 내일도 욕망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화살의 노래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 ​ 화살의 노래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H.W. Longfellow,1807~1882) ​ 나는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았네 그러나 화살은 땅에 떨어져 찾을 수 없었네 ​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의 자취 그 누가 빠른 화살을 따라갈 수 있었으랴. ​ 나는 허공을 향해 노래를 불렀네 그러나 내 노래는 허공에 퍼져 간 곳을 알 수 없었네 ​ 그 누가 예리하고도 밝은 눈이 있어 날아 퍼져간 그 노래 따라갈 수 있었으랴. ​ 세월이 흐른 뒤 고향의 뒷동산 참나무 밑둥에 그 화살은 부러지지 않은 채 꽂혀 있었고 ​ 내가 부른 노래는 처음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 속에 숨어 있었네 ​ ​ ​ 잃고 얻은 것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H.W. Longfellow,1807~1882) ​ 잃은 것과 얻은 것..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 준

그림 : 김 정 수 ​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 준 ​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 ​ 박준 시인 약력 * 출생 : 1983년, 서울 * 학력 : ..

보라빛 엽서 / 김 연 일 <작사>

그림 : 김 정 수 ​ ​ 보라빛 엽서 / 김 연 일 ​ 보라빛 엽서에 실려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엔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 * 보라빛 엽서 탄생 배경 23년 전 이웃사촌처럼 지내던 병원 의사가 가사를 써서 설운도에게 주었다고 한다. 애절한 가사에 매료된 설운도는 밤을 새워 곡을 완성 했지만 당시는 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