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 정 호 승 김 민 정 부치지 않은 편지 / 정 호 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거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정호승 시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문학이야기/명시 2021.01.06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Tiage Bandeira / Unsplash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의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 문학이야기/명시 2021.01.05
이 시각 주요 뉴스 (신춘 문예) Jakob Owens / Unsplash 이 시각 주요 뉴스 / 최인호 (2019,동아일보) 매미가 날개를 말리고 있었다 거리에 팔짱 낀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어제는 비가 왔었다 부동산 시장은 계속해서 커지고 정부는 수목장을 권장했다 A는 올해로 칠 년째 울고 있다 그동안 강아지가 실종되었고 A는 우느라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A의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빗소리가 거세져 A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멜로'라는 말은 '적당한 온도의 눈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뻥입니다 애써 줄여놓은 바지통을 다시 뜯어내야 했습니다 영화가 몇 편 개봉했습니다 네, 멜로입니다 짓궂어졌습니다 우리는 우울한 날 요가를 하는 사람들 티비 앞에서 내가 어떤 자세인지도 잊어버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 .. 문학이야기/명시 2021.01.04
길 / 윤 동 주 길 / 윤 동 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문학이야기/명시 2021.01.02
내 기분 / 강 달 막 그림 : 이 효 내 기분 / 강 달 막 이웃집 할망구가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줄 알고 버스도 안물어 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 3억 7천 / 김 길 순 "너는 글 잘 모르니까 내가 알아서 할께" 고마운 친구와 화장품 가게를 시작 했다 명의도 내 이름 카드도 내 이름으로 해준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다. 어느 날 친구는 은행 대출을 해서 도망갔고 나는 3억 7천 만원의 날벼락을 맞았다 아들 방까지 빼서 빚을 갚으며 "글만 알았어도....글만 알았어도......" 가슴을 쳤다. 나는 기를 쓰고 공부를 시작 했다.. 문학이야기/명시 2020.12.30
눈보라 / 황 지 우 장 용 길 눈보라 / 황 지 우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 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아주 추운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 문학이야기/명시 2020.12.28
나의 새 / 유 승 도 장 용 길 나의 새 / 유 승 도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았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너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 ~~ 승도야 출처 :포엠 서천 유승도 시인 1960년 충남 서천 출생 1995년 신인 문학상 당선 시집 :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되고 외 다수 문학이야기/명시 2020.12.28
아버지의 마음 / 김 현 승 이 미 정 아버지의 마음 / 김 현 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 문학이야기/명시 2020.12.27
반생 半生 / 나 호 열 반생 半生 / 나 호 열 유채꽃밭에 서면 유채꽃이 되고 높은 산 고고한 눈을 보면 눈이 되고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면 나도 노을이 되고 겨울하늘 나르는 기러기 보면 그 울음이 되고 싶은 사람아 어디서나 멀리 보이고 한시도 눈 돌리지 못하게 서 있어 눈물로 씻어내는 청청한 바람이려니 지나가는 구름이면 나는 비가 되고 나무를 보면 떨어지는 나뭇잎 되고 시냇물을 보면 맑은 물소리가 되는 사람아 하루 하루를 거슬러 올라와 깨끗한 피돌기로 내 영혼에 은어떼가 되리니 나는 깊어져 가고 너는 넓어져 가고 그렇게 내밀한 바다를 만들어가는 어디에 우리의 수평선을 걸어놓겠느냐 목숨아, 사람아 문학이야기/명시 2020.12.25
파도 / 목 필 균 파도 / 목 필 균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거대한 바위섬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던 파도는 산산이 부서지며 게거품을 물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독을 품고 달려든다 그러다가 시퍼렇게 그러다가 시퍼렇게 가슴에 멍만 들어 페리호 뱃전에 머리를 박고 두 발을 구르며 떼를 쓰다 눈물도 못 흘린 채 스러져 버린다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1946년 함양 출생 춘천교육대학졸업, 성신여대교육대학원졸업 1972년 신춘문예 단편 강원일보당선 1975년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세대지 시집 :풀꽃 술잔 나비 문학이야기/명시 202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