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부치지 않은 편지 / 정 호 승

김 민 정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 호 승 ​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거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 정호승 시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 Tiage Bandeira / Unsplash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의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와 빛이 다른 것 ​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

이 시각 주요 뉴스 (신춘 문예)

Jakob Owens / Unsplash 이 시각 주요 뉴스 / 최인호 (2019,동아일보) ​ 매미가 날개를 말리고 있었다 거리에 팔짱 낀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어제는 비가 왔었다 부동산 시장은 계속해서 커지고 정부는 수목장을 권장했다 ​ A는 올해로 칠 년째 울고 있다 그동안 강아지가 실종되었고 A는 우느라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A의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빗소리가 거세져 A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멜로'라는 말은 '적당한 온도의 눈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뻥입니다 애써 줄여놓은 바지통을 다시 뜯어내야 했습니다 영화가 몇 편 개봉했습니다 네, 멜로입니다 짓궂어졌습니다 ​ 우리는 우울한 날 요가를 하는 사람들 티비 앞에서 내가 어떤 자세인지도 잊어버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 ​..

길 / 윤 동 주

​ 길 / 윤 동 주 ​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내 기분 / 강 달 막

그림 : 이 효 ​ ​ 내 기분 / 강 달 막 ​ 이웃집 할망구가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지는 이름도 못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줄 알고 버스도 안물어 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 ..................................................................... ​ 3억 7천 / 김 길 순 ​ "너는 글 잘 모르니까 내가 알아서 할께" 고마운 친구와 화장품 가게를 시작 했다 명의도 내 이름 카드도 내 이름으로 해준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다. ​ 어느 날 친구는 은행 대출을 해서 도망갔고 나는 3억 7천 만원의 날벼락을 맞았다 아들 방까지 빼서 빚을 갚으며 "글만 알았어도....글만 알았어도......" 가슴을 쳤다. ​ 나는 기를 쓰고 공부를 시작 했다..

눈보라 / 황 지 우

장 용 길 ​ ​ 눈보라 / 황 지 우 ​ ​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 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아주 추운데를 나에게 남기고 ​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

나의 새 / 유 승 도

장 용 길 ​ ​ 나의 새 / 유 승 도 ​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았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너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 ~~ 승도야 ​ ​ ​ 출처 :포엠 서천 유승도 시인 1960년 충남 서천 출생 1995년 신인 문학상 당선 시집 :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되고 외 다수 ​

아버지의 마음 / 김 현 승

이 미 정 ​ ​ 아버지의 마음 / 김 현 승 ​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

반생 半生 / 나 호 열

반생 半生 / 나 호 열 유채꽃밭에 서면 유채꽃이 되고 높은 산 고고한 눈을 보면 눈이 되고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면 나도 노을이 되고 겨울하늘 나르는 기러기 보면 그 울음이 되고 싶은 사람아 어디서나 멀리 보이고 한시도 눈 돌리지 못하게 서 있어 눈물로 씻어내는 청청한 바람이려니 지나가는 구름이면 나는 비가 되고 나무를 보면 떨어지는 나뭇잎 되고 시냇물을 보면 맑은 물소리가 되는 사람아 하루 하루를 거슬러 올라와 깨끗한 피돌기로 내 영혼에 은어떼가 되리니 나는 깊어져 가고 너는 넓어져 가고 그렇게 내밀한 바다를 만들어가는 어디에 우리의 수평선을 걸어놓겠느냐 목숨아, 사람아

파도 / 목 필 균

​ 파도 / 목 필 균 ​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거대한 바위섬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던 파도는 산산이 부서지며 게거품을 물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독을 품고 달려든다 그러다가 시퍼렇게 그러다가 시퍼렇게 가슴에 멍만 들어 페리호 뱃전에 머리를 박고 두 발을 구르며 떼를 쓰다 눈물도 못 흘린 채 스러져 버린다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 ​ 1946년 함양 출생 춘천교육대학졸업, 성신여대교육대학원졸업 ​ 1972년 신춘문예 단편 강원일보당선 1975년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세대지 시집 :풀꽃 술잔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