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우리의 사랑 / 김 영 재

우리의 사랑 / 김 영 재 이젠 잠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사랑 다시 물로 만나 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하나가 되나니 저 작은 풀씨조차 떨어져 누운 자리 지키며 얼었던 땅을 뚫고 잎을 피우나니 바람과 추위가 얼리고 간 사랑 사람들은 돌아서서 불빛 속으로 떠나고 우리의 사랑 얼음으로 남아 긴 밤을 떨고 있었나니 너와 나의 가슴에 얼지 못한 피 목마른 그리움 이젠 잠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사랑 다시 물이 되어 나는 네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시집: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후회는 / 이 상 희

운악산 (가평, 현리) 후회는 / 이 상 희 마침표일까 쉼표일까 느낌표일까 물음표일까 삶을 뒤돌아 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오늘은 후회라는 시가 나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보게 한다. 누구에게나 지독하게 후회스러운 순간이 한 번쯤 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그 후회의 순간 얼마나 딸이 보고 싶었을까? 나는 그날 회식자리에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부르고, 나는 세상 노래를 불렀다. 나는 아직까지 마침표도, 쉼표도, 느낌표도, 물음표도 찍지 못했다. 아직도 연필을 들고 울음을 참고 있다. 첫눈이 오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우리가 / 박 준

지금은 우리가 / 박 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경희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수상: 2013 제31회 시동엽문학상 시 부문 시집: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바닷가에서 / 오세영

​ 바닷가에서 / 오세영 ​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있다 ​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있다 ​ ​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 도종환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 도종환 ​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 마음의 눈녹지 않는 그늘 한쪽을 나도 함께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여 우리가 아직도 아픔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슬픔만을 말하지 말자 돌아서면 혼자 우는 그대 눈물을 우리도 알지만 머나먼 길 홀로 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는가 눈물로 가는 길 피 흘리며 가야 하는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도 가고 있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는가 벗이여 어서 고개를 들자 머리를 흔들고 우리 서로 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가자 그대여 아직도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 ​ 도종환 시인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사범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1984년 동인지 에 시 를 발표하고 등단 ​ ​ ​ ​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 나호열

​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 나호열 구백 걸음 걸어 멈추는 곳 은행나무 줄지어 푸른 잎 틔어내고 한여름 폭포처럼 매미 울음 쏟아내고 가을 깊어가자 냄새나는 눈물방울들과 쓸어도 쓸어도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편지를 가슴에서 뜯어내더니 한 차례 눈 내리고 고요해진 뼈를 드러낸 은행나무 길 구백 걸음 오가는 사람 띄엄띄엄 밤길을 걸어 오늘은 찹쌀떡 두 개 주머니에 넣고 저 혼자 껌벅거리는 신호등 앞에 선다 배워도 모자라는 공부 때문에 지은 죄가 많아 때로는 무량하게 기대고 싶어 구백 걸음 걸어 가닿는 곳 떡 하나는 내가 먹고 너 배고프지 하며 먹다 만 떡 내밀 때 그예 목이 메어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마는 나에게는 학교이며 고해소이며 절간인 나의 어머니 ​ 시집 :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

슬픔이 빚어낸 빛깔 / 최 경 선

슬픔이 빚어낸 빛깔 / 최 경 선 저토록 도도한 빛깔을 본 적 없다 했다 한때는 핏빛처럼 고운 그 꽃잎이 눈부셔 까닭 없이 울었다 했다 애타게 향기로운 척해보고 꿈꾸듯 별을 품어 토해내고 알 수 없는 허허로움에 목메던 시절이었노라고 빛바래고 바래다, 오지게 말라비틀어져 가는 그 모양이 당신 모습 같아 더 섧고도 서럽다 했다 하다 하다, 끝내는 열정과 슬픔 버무린 듯한 저 도도함이 눈물겹지 않으냐며 옹이 박힌 등허리 성스럽게 웅크리며 그녀 고요히 똬리를 튼다 최경선 시인 *여수시 거문도 출생 *2004 신인상 수상 *시집:어찌 이리 푸른가 그 섬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