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너를 두고 / 나태주

그림 : 윤 성 옥 ​ ​ ​ 너를 두고 / 나태주 ​ ​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 ​ ​ 시집 : 나태주 대표시 선집 ​ ​

해마다 봄이 되면 / 조 병 화

그림 : 신 경 애 ​ ​ 해마다 봄이 되면 / 조 병 화 ​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 조병화 시집 : 어머니 ​ *시인은 어린 벗과 봄을 대비시..

배를 매며 / 장 석 남

그림 : 김 복 동 ​ ​ ​ 배를 매며 / 장 석 남 ​ ​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개 되는 것 ​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 ​ 시집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배를 매는 것에 빗대여서 표현한 작품이다. ​ ​ *장석남 약력 19..

길 / 이 관 묵

길 : 이 관 묵 삶, 고장이 잦다 가다 서고 가다 서고 생산 공장은 파산되고 정비소에선 부품이 없다고 한다 낡은 삶 벌써 몇 달째 갓길에 세워두고 눈비 맞힌다 고철 덩어리처럼 캄캄한 노후 시집 : 동백에 투숙하다. 약력 1947년 충남 공주 출생 1978년 으로 등단 시집: 수몰지구, 변형의 바람, 저녁비를 만나거든 가랑잎 경, 시간의 사육 등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사랑한다는 것은 / 이 효 나는 꽃을 사랑하면서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삶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도 한그루 꽃나무를 심는 것은 당신이 내게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적 있는가 사랑이 가장 낮은 곳에 이르면 비로소 마음에 깊은 우물을 본다 오늘도 우물가에서 서성인다 눈물로 살려낸 보랏빛 꽃잎들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가 그늘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는 것

슬픔이 빚어낸 빛깔 / 최 경 선

그림 : 류 영 도 ​ ​ 슬픔이 빚어낸 빛깔 / 최 경 선 ​ ​ 저토록 도도한 빛깔을 본적 없다 했다 ​ 한때는 핏빛처럼 고운 그 꽃잎이 눈부셔 까닭 없이 울었다 했다 ​ 애타게 향기로운 척해보고 꿈꾸듯 별을 품어 토해내고 알 수 없는 허허로움에 목메던 시절이었노라고 ​ 빛바래고 바래다, 오지게 말라비틀어져 가는 그 모양이 당신 모습 같아 더 섧고도 서럽다 했다 ​ 하다 하다, 끝내는 열정과 슬픔 버무린 듯한 저 도도함이 눈물겹지 않으냐며 ​ 옹이 박힌 등허리 성스럽게 웅크리며 그녀 고요히 똬리를 튼다 ​ ​ 시집 : 그 섬을 떠나왔다

꽃이 진다면 / 이 순 주

그림 : 이 순 주 꽃이 진다면 / 황 은 경 꽃이 진 자리도 아픈가 봐요 계절의 흐름대로 아픈 자리에 다시 피는 다른 꽃 사람의 가슴처럼 아픔이 있어요 꽃이 진 자리에는 물기조차 머물 새가 없겠지요 이른 아침 거미그물이 받쳐 준 성수 같은 눈물 초록의 들풀이 꿈꾸는 자리에 떨굽니다 떠남의 의미가 지워진다고 가슴에 담은 사랑이 지워지지 않아요 꽃이 진 자리에 다시 생명이 닿을 때까지 부디, 우리 아프지 말아요. 시집 : 생각의 비늘은 허물을 덮는다

어느 외로운 날 / 조두환 시인

장순현 / 어느날 어느 외로운 날 / 조두환 시인 먹구름이 주저앉은 도시 빌딩가 좁고 어두운 하늘아래 검은 바람이 분다 길가의 집과 사람들이 고광도 불빛 아래 환하게 드러나는 때 모두가 낯익은 것들이지만 모두가 나와는 무관하다 나는 여전히 외롭다 상점가 모퉁이에서 걸어 나오는 나와 똑같은 코트 입은 중년남자 나와 똑같은 스마트폰을 꺼낸다 알 수 없는 우연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지만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나와는 무관하다 나는 여전히 외롭다. 시집 : 우리는 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