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화전

화전 / 김 병 화 그 무덥던 더위도 가셔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 분다 스케치북 들고 화전 쪽으로 간다 북으로 뻗은 철길 따라가다 보면 무성한 잡초 위 머리만 동강 난 녹슨 기차본다 끊어진 선로...... 개성으로 가는 길목엔 탄가루 얼룩져 눈만 반짝이는 역부 스케치한다 소박한 입가 수염 송송하다 "잘 그리네유 좋은 취미 갖어 스라우" 긴 화차, 수레, 탄 나르는 역부들..... 온통 먹빛의 역촌이지만 하루 저무는 저녁나절 석양 눈부시다 일손 마치고 하나둘......흩어져 저마다 갈 곳 가고 있는데 유독 끊어져 슬피우는__.

목발 11 (나들이)

모발11 (나들이) / 나 호 열 한 사람은 부끄러워서 한 사람은 어색해서 평생 손 마주 잡지 못했다 오늘은 고샅길 지나 꽃구경 간다 날마다 지게 지고 소쿠리 이고 다니던 산길에 산수유도 피고 매화도 활짝 얼굴을 폈다 허리도 굽고 다리 힘도 없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손 꼭 잡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부끄러움도 없이 어색함도 없이 한 그루 꽃나무로 피었다.

기우는 해

기우는 해 / 신 달 자 너는 산을 넘고 나에겐 밤이 온다 너의 불붙는 옷자락에 내 피가 기울어 나는 더욱 캄캄해지고 더 캄캄해질수록 산을 넘는 너의 불꽃은 활활 탄다 캄캄해지는 것과 불붙는 일 내 생을 줄이면서 이 두 가지일 것 그 두 가지가 오늘 더 찬란하게 마른 울음으로 땅을 친다 마음 구석에 달라붙은 상처들은 지구의 반이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도 옮겨 붙지 않고 따로 타오르고 나는 어둠에 섞여 따로 어두워지고~~

헤어진다는 것은

헤어진다는 것은 / 조 병 화 맑아지는 감정의 물가에 손을 담그고 이슬이 사라지듯이 거치러운 내 감정이 내 손으로 깊이 사라지길 기다렸습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하고 헤어질 이 시간에 해와 달이 돌다 밤이 내리면 목에 가을 옷을 말고 -이젠 서로 사랑만 가지곤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워서 못 일어서는 서로의 자리올시다 슬픈 기억들에 젖은 사람들 별 아래 밤이 내리고 네온이 내리고 사무쳐서 모이다 진 자리에 마음이올시다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하고 헤어질 이 시간에

바랭이

바랭이 / 최 영 호 땡볕에 바랭이야 굿판 한 번 놀아나 보자 엊그제 땡처리된 달개비도 불러와서 맨땅에 벼락 치듯이 신명이나 덩더꿍 놀자 호구가 따로 있나 사는 놈이 장땡이지 한시름 휘어 잡혀 머리채 패대기쳐도 살아서 죽는 날까지 얽히고설켜 새끼도 치고 비정규 일용이는 애면글면 헤매는데 쌓이면 설음 되고 맺히면 병이 되어도 사는 건 벌 거 있다며 견디는 게 사는 거라며 쇠뜨기 질경이야 살풀이 한판 어절시구나 바지춤 홀랑 내린 각설이 품바춤에 징하고 독한 놈끼리 살막이나 놀아보자 *최영호 1999년 현대시조 추천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김마중 문학상, 청강 문학상,형평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시집(노다지 라예) (죽고 못사는) (컵밥 3000 오디세이아)

희망은 날개 달린 것

희망은 날개 달린 것 / 에밀리 디킨스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 가운데 앉아 가사 없는 노래 부르네 그치지 않는 그 노래 모진 바람 불 때 제일 감미로워라 많은 사람 따뜻이 감싸준 그 작은 새 당황케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매서운 폭풍이리 나는 가장 추운 땅에서도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 들었네 하지만 아무리 절박해도 그것은 내게 먹이를 달라 하지 않았네

화요일

화요일 / 김 남 규 하늘은 필 듯 말 듯 손그늘에 드나들고 흘리듯이 말해도 서로를 흠뻑 적시며 떼쓰는 봄날, 봄의 날 소꼽놀이 허밍처럼 우리는 지는 사람 진다고 흔들리는 사람 저수지 한 바퀴 돌면 계절 하나 바뀌겠지 꽃나비 가만 내려앉듯 마음 툭 치는 일몰 한 점 *김남규 / 충남 천안 출생.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외 수상. 시조집(밤만 사는 당신) 등과,연구서 (근대 현대시의 정형률 연구)가 있음

여름의 마지막 장미

여름의 마지막 장미 / 토마스무어(아일랜드시인) 여름의 마지막 장미꽃 하나 홀로 남아서 피었구나 사랑하는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꽃잎도 없고, 꽃순도 남은 게 없다 빨갛던 얼굴들을 서로 볼 수도 슬픔을 주고 받을 수도 없구나 줄기라도 기억해 주기 위해 외로운 그대 홀로 남겨 놓고 난 떠나지 않으리 가서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요 친구들이 떨어져 잠든 화단에 같이 잎파리 그대 잠든 위에 사뿐히 뿌려 줄 테니 친구들이 없어지면 나도 곧 따라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