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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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아이 / 박준

​ ​ ​ ​ ​ 천변 아이 / 박준 ​ 게들은 내장부터 차가워진다 마을에서는 잡은 게를 바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 가둬 먹이를 주어가며 닷새며 열흘을 더 길러 살을 불린다 아이는 심부름길에 몰래 게를 꺼내 강물에 풀어준다 찬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는 한밤에도 낮에 마주친 게들이 떠올라 한두 마리 더 집어 들고 강으로 간다 ​ ​ ​ ​ ​ 박준 시집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 있겠습니다 ​ ​ ​ ​ ​ ​

고향에 핀 도라지꽃 / 이 효

​ ​ 고향에 핀 도라지꽃 / 이 효​ ​ 밥상에 오른 도라지나물 고향 생각난다 할머니 장독대 도라지꽃 어린 손녀 잔기침 소리 배를 품은 도라지 속살 달빛으로 달여 주셨지 세월이 흘러 삐걱거리는 구두를 신은 하루 생각나는 고향의 보랏빛 꿈 풍선처럼 부푼 봉오리 두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면 펑하고 터졌지 멀리서 들리는 할머니 목소리 애야, 꽃봉오리 누르지 마라 누군가 아프다 아침 밥상에 도라지나물 고향 생각하면 쌉쏘름하다

첫사랑 / 괴테

그림 / 박인호 ​ ​ ​ ​ ​ 첫사랑 / 괴테 ​ ​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날 그 첫사랑의 날을.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시절의 그 사랑스러운 때를, ​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키우며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슬픔에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하고 있으니 아, 누가 돌봐주랴 그 아름다운 나날 첫사랑 그 즐거운 때를. ​ ​ ​ ​ ​ 시집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 ​ ​ ​ ​ ​

감자 이야기 / 조은설

그림 / 김정숙 감자 이야기 / 조은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춘삼월 햇빛 좋은 날은 온 가족이 밭에 나가 감자를 심는다 감자는 눈 하나에 햇살 한 수저 땀방울도 모아들여 감자밭에 묻는다 하지 무렵이면 흰 달이 땅속 줄기마다 알을 슬어 열두 덩이씩 부풀어 오르는데 산달이 된 밭고랑마다 해산을 시작한다 낡은 저녁 식탁엔 한 접시 수북한 달의 알들 벽에 걸린 램프 등은 흐뭇한 미소를 후광처럼 걸어 주고 포실포실 살진 달 베어 먹은 만큼 행복도 자라는 달 지금쯤 지붕 위엔 달빛 한 동이 엎어지려고 풀벌레 소리가 달빛보다 희게 젖고 있을 것이다 출처 / 지성의 상상 미네르바

문학이야기 2023.07.18

어느 개인 날 / 이어령

그림 / 박은영 어느 개인 날 / 이어령 태양은 혼자의 힘으로 빛나는 것은 아니다. 비나 구름 그리고 어둠과 함께 있을 때 빛은 비로소 빛이 된다. 사막의 모래알을 비출 때 태양은 저주지만 풀잎 이슬 위로 쏟아지면 축복이다. 태양이 이슬에 젖는 순간마다 태양빛은 새로워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밤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밤을 통해 새벽의 빛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홍수를 주신 것이 아니라 홍수로 인해 아름다운 무지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하여 아름다워지는 생명을 주신 것이다. 태양은 흑점의 어둠이 있어 빛나는 것이다. 이어령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당신의 여백은 침묵이 아니다 / 조은설

작품 / 김명희 당신의 여백은 침묵이 아니다 / 조은설 당신의 여백은 나에게 참 많은 말을 한다 모서리에 앉은 나를 하염없이 귀 기울이게 하지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여백 달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마가 환하다 가난한 영혼이 잠시 쉬어가는 당신의 뜨락 새벽 별들이 까치발로 걸어와 발치에 눕는다 내 간절함의 무게를 끌고 웜홀을 통과하던 기도 소리가 잠시 허리를 펴는 시간 허공의 질긴 목마름을 건너가고 있다 당신에게 가는 길 *웜홀 ; 블랙홀과 화이트홀로 연결된 우주 내의 통로 *출처 / 지성의 상상 미네르바 (2023년 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

그림 / 방선옥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서러워하거나 노하지 마라. 슬픔의 날엔 마음 가다듬고 자신을 믿으라. 이제 곧 기쁨의 날이 오리라. 마음은 내일에 사는 것 오늘 비록 비참할지라도 모든 것은 순간적이며 그것들은 한결같이 지나가 버리고 지나간 것은 값진 것이다. 시집 / 한국인이 가장 사라한 명시 100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