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 김소연

푸른 언덕 2023. 8. 21. 07:20

 

그림 / 김현숙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 김소연

 

 

 

 

살구나무 아래 농익은 살구가 떨어져 뒹굴듯이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너무 많은 질문들이

도착해 있다

 

다른 꽃이 피었던 자리에서 피는 꽃

다른 사람이 죽었던 자리에서 사는 한가족

몇 사람을 더 견디려고 몇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우리 같은 사람을 나누어 가진 적이 있다

같은 슬픔을 자주 그리워한다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나를 당신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지난 여인들이 자꾸 나타나

자기 이야기를 겹쳐 쓰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되어 간다

 

당신은 알라의 얼굴에서

예수의 표정이 묻어나는 걸 보았다고 했다

내 걸음걸이에서 이제는

당신이 묻어 나오는 걸 아느냐고

당신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두 개의 바다가 만나는 해안에

도착했다

 

늙은 아기가 햇볕에 나와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바다가 질문들을 한없이 밀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장소뿐이었지만

어느새 우리들 기억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김소연 시집 :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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