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 오정국

푸른 언덕 2023. 8. 19. 08:39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 오정국




매미가 허물을 벗는, 점액질의 시간을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갖이 찢어지고 벗겨지는 순간, 그 날개에 번갯불의 섬광이 새겨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생살 긁히듯 뜯기듯, 끈끈하고 미끄럽게, 몸이 몸을 뚫고 나와,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를 살려 내는,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도 죽이는, 여기에 고요히 내 숨결을 얹어 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오정국 시집 / 파묻힌  얼굴 <민음사> 2011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 김소연  (4) 2023.08.21
아내 / 이경렬  (3) 2023.08.20
현대시 / 김산​​  (3) 2023.08.18
감나무 / 이재무  (5) 2023.08.16
지상의 방 한 칸 / 김사인  (4) 202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