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굽다 / 조은설
-고등어
한 토막 바다를 잘라 석쇠 위에 올린다
서슬이 시퍼런 칼날 같은 등줄기, 파도를 휘감아 매우 치던
단단하고 날렵한 몸매
이젠 누군가의 재물로 누워 있다
미쳐 감지 못한 눈에
장엄한 일몰에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산호초의 꽃그늘도 어둠 속에 저물었다
먼바다에서부터 서서히 귀가 열려
수심 깊은 계곡에서 들려오는
혹동고래의 낮은 휘파람 소리
나는 지금
수평선 한 줄 당겨와 빨랫줄을 매고
소금기 묻은 시간을 탁탁 털어 말린 후
바다 한 토막,
그 고소한 여유를 굽고 있다
<미네르바 2023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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