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바다를 굽다 / 조은설

푸른 언덕 2023. 8. 29. 09:07

바다를 굽다 / 조은설

-고등어

한 토막 바다를 잘라 석쇠 위에 올린다

서슬이 시퍼런 칼날 같은 등줄기, 파도를 휘감아 매우 치던

단단하고 날렵한 몸매

이젠 누군가의 재물로 누워 있다

미쳐 감지 못한 눈에

장엄한 일몰에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산호초의 꽃그늘도 어둠 속에 저물었다

먼바다에서부터 서서히 귀가 열려

수심 깊은 계곡에서 들려오는

혹동고래의 낮은 휘파람 소리

나는 지금

수평선 한 줄 당겨와 빨랫줄을 매고

소금기 묻은 시간을 탁탁 털어 말린 후

바다 한 토막,

그 고소한 여유를 굽고 있다

<미네르바 2023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