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 1387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그림 / 심재관 ​ ​ ​ ​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 ​ ​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 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 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 ​

작은 소망 / 이해인

그림 / 서명덕 ​ ​ ​ 작은 소망 / 이해인​ ​ ​​ 내가 죽기 전 ​ 한 톨의 소금 같은 시를 써서 ​ 누군가의 마음을 ​ 하얗게 만들 수 있을까 ​ 한 톨의 시가 세상을 ​ 다 구원하진 못해도 ​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드는 ​ 작은 기도는 될 수 있지 ​ 힘들 때 잠시 웃음을 찾는 ​ 작은 위로는 될 수 있겠지 ​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 나는 행복하여 ​ 맛있는 소금 한 톨 찾는 중이네 ​ ​ ​ 이해인 시집 /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 ​ ​ ​

축하합니다 / 정호승

그림 / 송대호 축하합니다 / 정호승 이 봄날에 꽃으로 피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이 겨울날에 눈으로 내리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괜찮아요, 손 드세요, 손 들어보세요 아, 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신 분 손 드셨군요 바위에 씨 뿌리다가 지치신 분 손 드셨군요 첫눈을 기다리다가 서서 죽으신 분도 손 드셨군요 네, 네, 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실패를 축하합니다 천국이 없어 예수가 울고 있는 오늘밤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희망 없이 열심히 살아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축하합니다 정호승 시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푸른밤 / 나희덕

그림 주인공 / 엘리자베트(시시)왕후 / 화가 : 요제프 호라체크( 1830-1885) 유화 *오스트리아 국민이 가장 사랑했던 왕후 ​ ​ ​ ​ 푸른밤 / 나희덕 ​ ​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과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 ​ ​ 시집 / 평생 간직하고 싶은 시 ​ ​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그림 / 신종섭 ​ ​ ​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 ​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 ​ 시집 / 평생 간직하고픈 시 ​ ​ ​ ​ ​

냉이꽃 / 이근배

그림 주인공 / 페르디 난트 2세 대공 ​ ​ ​ 냉이꽃 / 이근배 ​ ​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거야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 ​ ​ 시집 /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애송 명시 ​

사라져 가는 청춘 / 헤르만 헤세

그림 / 프란츠 요제프 1세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오스트리아 황제) ​ ​ ​ ​ 사라져 가는 청춘 / 헤르만 헤세 ​ ​ ​ 지친 여름이 고개를 드리우고 호수에 비친 그의 퇴색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피곤에 지친 나는 먼지에 싸여 가로수 그늘을 거닐고 있다. ​ 포플러 사이로,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이 지나간다. 내 뒤에 빨갛게 하늘이 타오르고 앞에는 밤의 불안이 -어스름이 -죽음이. ​ 지쳐, 먼지에 싸여 나는 걷는다. 그러나 청춘은 머뭇머뭇 뒤에 처져서 고운 머리를 갸웃거리고 나와 함께 앞으로 더 가려 하지 않는다. ​ ​ ​ ​ 헤르만 허세 시집 / 송영택 옮김 ​ ​

봄날 / 헤르만 헤세

그림 / 마르가리타 공주 , 벨라스케스 ​ ​ ​ 봄날 / 헤르만 헤세 ​ ​ 수풀에는 바람 소리, 또 새소리 드높이 아늑한 푸른 하늘에 의젓이 떠가는 구름 조각배... 금발의 여인을, 어린 시절을 나는 꿈꾼다. 끝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은 내 동경의 요람. 그 속에 포근히 드러누워 나직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든다.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아기처럼. ​ ​ ​ 헤르만 헤세 시집 / 송영택 옮김

첫사랑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림 / 박인호 첫사랑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비록 떠가는 달처럼 미의 잔인한 종족 속에서 키워졌지만, 그녀는 한동안 걷고 잠깐은 얼굴 붉히며 내가 다니는 길에 서 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다고 내가 생각할 때까지. 허나 나 그 위에 손을 얹어 차가운 마음을 발견한 이래 많은 것을 기도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매번 뻗치는 손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달 위를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웃었고, 그건 나를 변모시켜 얼간이로 만들었고, 여기저기를 어정거린다, 달이 사리진 뒤의 별들의 천공운행 보다 더 텅 빈 머리로. 시집 / 세계의 명시 1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성복

그림 / 김기정 ​ ​ ​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성복 ​ ​ ​ 겨울날 키 작은 나무 아래 종종걸음 치던 그 어둡고 추운 푸른빛, ​ 지나가던 눈길에 끌려나와 아주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살게 된 빛 ​ 어떤 빛은 하도 키가 작아, 쪼글씨고 앉아 고개 치켜들어야 보이기도 한다 ​ ​ ​ ​ ​ 이성복 시집 / 아, 입이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