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966

봄날 / 헤르만 헤세

그림 / 마르가리타 공주 , 벨라스케스 ​ ​ ​ 봄날 / 헤르만 헤세 ​ ​ 수풀에는 바람 소리, 또 새소리 드높이 아늑한 푸른 하늘에 의젓이 떠가는 구름 조각배... 금발의 여인을, 어린 시절을 나는 꿈꾼다. 끝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은 내 동경의 요람. 그 속에 포근히 드러누워 나직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든다.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아기처럼. ​ ​ ​ 헤르만 헤세 시집 / 송영택 옮김

첫사랑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림 / 박인호 첫사랑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비록 떠가는 달처럼 미의 잔인한 종족 속에서 키워졌지만, 그녀는 한동안 걷고 잠깐은 얼굴 붉히며 내가 다니는 길에 서 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다고 내가 생각할 때까지. 허나 나 그 위에 손을 얹어 차가운 마음을 발견한 이래 많은 것을 기도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매번 뻗치는 손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달 위를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웃었고, 그건 나를 변모시켜 얼간이로 만들었고, 여기저기를 어정거린다, 달이 사리진 뒤의 별들의 천공운행 보다 더 텅 빈 머리로. 시집 / 세계의 명시 1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성복

그림 / 김기정 ​ ​ ​ 그 어둡고 추운, 푸른 / 이성복 ​ ​ ​ 겨울날 키 작은 나무 아래 종종걸음 치던 그 어둡고 추운 푸른빛, ​ 지나가던 눈길에 끌려나와 아주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살게 된 빛 ​ 어떤 빛은 하도 키가 작아, 쪼글씨고 앉아 고개 치켜들어야 보이기도 한다 ​ ​ ​ ​ ​ 이성복 시집 / 아, 입이 없는 것들

고흐의 바다 / 이생진

그림 / 김진구 ​ ​ ​ ​ 고흐의 바다 / 이생진 함부로 뛰어들 수 없는 바다 어부는 배가 있어야 하고 화가는 흥분이 있어야 한다 이젤을 세우는 순간 멍해진 고흐 생트 마리 드라 메르 해안에서 지중해의 시퍼런 압력에 으스러져라 튜브를 짜는 혼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흰색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야성 바닷속으로 뛰어든 고등어와 고래와 상어의 눈에 뜨거운 아프리카가 보인다 *충남 서산 출생 *대표 시집 / 그리운 성산포 *최근 시집 / 반고흐, 너도 미쳐라 *수상 경력 / 윤동주 문학상, 이상화 문학상 ​ ​ ​

깃털 하나 / 안도현 ​

그림 / 박정실 ​ ​ ​ ​ 깃털 하나 / 안도현 ​ ​ ​ 거무스름한 깃털 하나 땅에 떨어져 있기에 주워 들어보니 너무나 가볍다 들비둘기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라 한다 한때 이것은 숨을 쉴 때마다 발랑거리던 존재의 빨간 알몸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깃털 하나의 무게로 가슴이 쿵쿵 뛴다 ​ ​ ​ ​ 안도현 시집 / 그리운 여운 ​ ​ ​ ​

안개 속으로 / 헤르만 헤세

그림 / 신종섭 ​ ​ ​ ​ 안개 속으로 / 헤르만 헤세​ ​ ​ ​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블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어둠을, 떨칠 수 없게 조용히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 ​ ​ ​ 시집 / 세계의 명시 1 ​ ​ ​

기탄잘리 1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그림 / 이미숙 기탄잘리 1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한 새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신 손길의 끝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없는 즐거움에 젖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발합니다. 당신의 무궁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뜻으로 이 시집은 인간과 신(초월자)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빌려서 읊은 103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그림 / 신종섭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시집 / 세계의 명시

목련 / 이대흠

그림 / 류봉현 ​ ​ ​ ​ 목련 / 이대흠 ​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그 이름이 하 맑아 그대로 둘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냥 푸른 하늘로 놓아두고 맺히는 내 마음만 꽃받침이 되어야지 목련꽃 송이마다 마음을 달아두고 하늘빛 같은 그 사람을 꽃자리에 앉혀야지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이 폈겠냐고 그리 오래 허공으로 계시면 내가 어찌 꽃으로 울지 않겠냐고 흔들려도 봐야지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이라고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이라고 ​ ​ ​ 이대흠 시집 /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 ​ ​ ..

끝없는 길 (지렁이) / 최금진

그림 / 장정화 ​ ​ ​ ​ 끝없는 길 (지렁이) / 최금진​ ​ ​ 끔틀거리는 의지로 어둠속 터널을 뚫는다 덧난 상처가 다시 가려워지는 쪽이 길이라고 믿으며 흙을 씹는다 눈뜨지 않아도 몸을 거쳐가는 시간 이대로 멈추면 여긴 딱 맞는 관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나올까 무너진 길의 처음을 다시 만나기로 할까 잘린 손목의 신경 같은 본능만 남아 벌겋게 어둠을 쥐었다, 놓는다 돌아보면 캄캄하게 막장 무너져내리는 소리 앞도 뒤도 없고 후퇴도 전진도 없다 누군가 파묻은 탯줄처럼 삭은 노끈 한 조각이 되어 다 동여매지 못한 어느 끝에 제 몸을 이어보려는 듯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 어둠에 血이 돈다 ​ ​ ​ ​ ​ 최금진 시집 / 새들의 역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