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장정화
끝없는 길 (지렁이) / 최금진
끔틀거리는 의지로
어둠속 터널을 뚫는다
덧난 상처가 다시 가려워지는 쪽이 길이라고 믿으며 흙을 씹는다
눈뜨지 않아도 몸을 거쳐가는 시간
이대로 멈추면 여긴 딱 맞는 관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나올까
무너진 길의 처음을 다시 만나기로 할까
잘린 손목의 신경 같은 본능만 남아
벌겋게 어둠을 쥐었다, 놓는다
돌아보면 캄캄하게 막장 무너져내리는 소리
앞도 뒤도 없고 후퇴도 전진도 없다
누군가 파묻은 탯줄처럼 삭은
노끈 한 조각이 되어
다 동여매지 못한 어느 끝에 제 몸을 이어보려는 듯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
어둠에 血이 돈다
최금진 시집 / 새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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