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3/03 27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그림 / 정규설 ​ ​ ​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 ​ 풀잎은 쓰러져서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라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 ​ ​ 시집 / 너에게 주고픈 아름다운 시 ​ ​ ​ ​ ​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7 (11)

별 하나 / 도종환

그림 / 다비드자맹 별 하나 / 도종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의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시집 / 너에게 주고픈 아름다운 시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6 (15)

​일요일에 심장에게 / 쉼보르스카

그림 / 조영진 ​ ​ ​ ​ 일요일에 심장에게 / 쉼보르스카 ​ ​ ​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보채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아서. 타고난 성실함과 부지런함에 대해 그 어떤 보상도, 아첨도 요구하지 않아서. ​ 너는 1분에 70번의 공로를 세우고 있구나. 네 모든 수축은 마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조각배를 바다 한가운데로 힘차게 밀어내는 것 같구나. ​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한 번, 또 한 번, 나를 전체에서 분리시켜줘서, 심지어 꿈에서조차 따로 있게 해줘서. ​ 내가 늦잠을 자지 않고 비행시간을 맞출 수 있게 해줘서, 날개가 필요 없는 비행 말야. ​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내가 또다시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주어서. 비록 오늘은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날이지만, 내 갈비뼈..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5 (5)

살아 있어서 감사 / 김재진​

그림 / 홍종구 ​ ​ ​ ​ 살아 있어서 감사 / 김재진​ ​ ​ ​ 안 난 줄 알았는데 새순이 나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파랗게 산천을 물들이네. 아픈 세상살이 이와 같아서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내려가네. 다내려간 줄 알았는데 창이 뚫리네. 겨우 열린 창 틈으로 먼 하늘 보며 때로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감사, 살아 있어서 감사 ​ ​ ​ ​ 김재진 시집 /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 블친님들 ^^ 개인적인 사정으로 5일 동안 답방이 어렵습니다. 매일 오셔서 시 한 편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 ​ ​​ ​ ​ ​ ​ ​ ​ ​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4 (9)

사랑을 묻거든 / 김재진​​

그림 / 국중길 ​ ​ ​ ​ 사랑을 묻거든 / 김재진​ ​ ​ ​ 사랑을 묻거든 없다고 해라. 내 안에 있어 줄어들지 않는 사랑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니 누가 사랑했냐고 묻거든 모르겠다고 해라. 아파할 일도 없으며 힘들어할 일도 없으니 누가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거든 나를 적시며 흘러가버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강물이라고 해라. ​ ​ ​ 김재진 시집 /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 블친님들 ^^ 개인적인 사정으로 5일 동안 답방이 어렵습니다. 매일 오셔서 시 한 편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 ​ ​ ​ ​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3 (10)

연못 위에 쓰다 / 안도현​​

그림 / 김현주 ​ ​ ​ 연못 위에 쓰다 / 안도현​ ​ ​ 당신을 병상에 버리고 당신은 유리창 넘어로 저를 버리고 ​ 저는 밤마다 아무도 읽지 않을 이야기를 썼죠 ​ 마당 가에 연못을 들였고요 당신이 꽃의 모가지를 따서 한 홉쯤 말려서 소포로 보내주신다면 꽂잎을 물 위에 뿌려놓고 꽃잎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바라보려 했죠 ​ 당신은 오래 죽은 척 가만히 누워 있었죠 발톱을 깎아 달라는 청을 들어주지 못했어요 ​ 연못가에 앉아 제 발등을 바라보는 동안 풀이 시들고 바람이 사나워지고 골짜기 안쪽에 눈이 몰려왔어요 당신의 장롱과 당신의 옷을 분리하고 당신의 부엌에서 당신의 수저를 떼어내고 면사무소가서 이름을 지웠지요 ​ 저는 이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문법을 잊고 마음껏 미끄러질 수 있게 되..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2 (9)

꽃의 비밀 / 문태준

그림 /유진선 꽃의 비밀 / 문태준 숨을 쉬려고 꽃은 피어나는 거래요 숨 한 번 쉬어 일어나서 일어나서 미풍이 되려고 피어나는 거래요 우리가 오카리나를 불던 음악 시간에 꽃들은 더욱 보드랍게 피어났지요 꽃밭에서 꽃들은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 홍조를 얹고 호흡을 주고받고 서로의 입구가 되었지요 꽃들은 낮밤과 계절을 잊고 사랑하며 계속 피어났지요 문태준 시집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 블친님들 ^^ 개인적인 사정으로 5일 동안 답방이 어렵습니다. 매일 오셔서 시 한 편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1 (9)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그림 / 유해랑 ​ ​ ​ 스며드는 것 / 안도현​ ​ ​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에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다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다 ​ ​ ​ 안도현 시집 / 간절하게 참 철없이 ​ ​ ​ * 블친님들 ^^ 개인적인 사정으로 5일 동안 답방이 어렵습니다. 매일 오셔서 시 한 편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 ​ ​ ​ ​ ​ ​

문학이야기/명시 2023.03.20 (10)

바다를 본다 / 이 생 진

그 림 / 후후 바다를 본다 / 이 생 진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 성산포 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이생진 시집 / 그리운 바다 성산포

문학이야기/명시 2023.03.19 (31)